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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시굴트 올슨  

<늘푸른나무/단편과 수필들/2010년 3월>

시굴트 올슨(Sigurd Olsun)의 <3월의 바람>

미국의 북부지방에서 겨울을 보내고 눈이 얼마나 높이 쌓이는지를, 수은주가 화씨 0도를 밑 도는 추위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봄을 알리는 첫 번째 전조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하려면 북부지역에 살아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햇볕을 쪼이거나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프로리다에 가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의 징조를 감사한 마음으로 맞기 위해서는 그것을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하며, 그것을 바라고 꿈꾸어야만 하며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어 내어야 한다.

북미주에서 봄을 기다리는 것은 군대 병영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날씨가 무척 춥고 겨울이 전에 보다 좀 더 길어질 때는 봄에 대한 생각 자체만으로도 살맛을 느끼게 하여 준다. 일단 3월에 들어 서면 날씨가 아무리 춥고 거칠어도 봄의 징후들은 여기 저기 나타난다.

호수에 얼음이 아무리 두꺼워도, 치워 놓은 눈 더미가 아무리 높아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바람 속에 담겨 있는 그 무엇이 모든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다. 나는 3월도 하순으로 내닫던 어느 날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봄의 약속인 희미하게나마 부드러워진 대지의 힌트를, 약간 누그러진 추위의 감촉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하던 일을, 또 금방 하여야 할 일들을 깜박 잊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집 밖 햇볕 쪼이는 곳에 서서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돌아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눈덩이들은 그대로 있었고 북서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지난 몇 달 동안 눈을 몰아다 뿌리던 강풍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나는 내 옆에서 졸졸 흘러 내리는 물소리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속삭이듯 자그마한 소리였지만 그것이 모든 계곡에 쌓인 눈들을 녹여 버릴 수 백만 물방울의 전조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나무들의 훈훈한 냄새, 소나무와 침엽수와 남쪽 언덕에서 녹기 시작한 나무진의 냄새 등 봄의 냄새를 실감나게 맡은 것은 바로 이때였다. 나는 거기에 서서 사슬에서 놓여나 신바람이 난 사냥개와도 같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굶주렸던 코를 통해 마음껏 봄의 향기를 들여 마셨다.

집의 바로 아래에는 손바닥만한 맨 땅들이 눈 더미, 흙 더미들과 얽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3월의 태양은 이미 거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눈 더미 밑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첫 번째 폭풍이 지나갔을 때 만들어 놓았던 얼음덩이들을 쪼개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내 옆에는 발삼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나는 침과 같은 잎 파리들을 한 손 가득 뜯어 손 바닥에 놓고 비볐다. 그것들은 냄새를 풍기면서 빤짝이는 호수와 그곳에 떠다니는 화물선들과 캠프장 그리고 내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 갔던 수많은 일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내가 내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다람쥐를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다람쥐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녀석이 나의 조그마한 움직임도 감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조금 움직이자 그 녀석 옆구리의 흰 무늬 털들이 바짝 일어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옆구리의 털들이 찬란하게 펼쳐지더니 근육경색을 풀어 주는 듯 편안한 자세로 다람쥐가 흥분하는 모양으로 떨고 있었다.

나는 동네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초더미 옆 숲 속에서 겨울을 나면서 덥수룩해진두 마리의 통나무를 운반하는 말들이 보였다. 그들은 머리를 숙인 채 뒷목 부분에 햇볕을 잔뜩 받으며 서 있었다. 그들에게 이것은 푸른 초장이며 따스함이다. 북풍을 막아주는 눈 덮인 통나무 마구간에서의 밤이 끝난 것이다. 더 이상 화씨 -40도의 추운 새벽에 일어나서 벌목장까지 가는 얼음 덮인 길을 찌그럭 거리는 썰매를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초덤불 옆의 헛간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사지를 쭉 뻗고 들어 누워 잠이 들었다. 고양이의 등을 한대 치자 등을 꾸부리더니 부드럽게 끄르럭 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속에서 울러 나오는 묵직한 소리로 바뀌었다. 숲이 우거진 뒷 골목이나 풀밭 그리고 정원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밤은 칠흑처럼 깜깜하여 고양이에게는 파라다이스 같은 때 무성한 숲 속을 가로지르면서 어린 토끼새끼들을 사냥하는 꿈을 꾸었으리라.

많은 것들을 보았기에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집에 들어와 나의 타이프라이터를 보았을 때 태양은 이미 일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영혼 속에 게으름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이다. 두어 시간이 지나 가벼웠던 바람이 눈보라를 몰아오는 돌풍으로 바뀌고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며 꿈이 거의 잊혀지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다. 그러나 첫 번째 날의 조그마한 사건 이후로는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았다.

Sigurd Olson(1899-1982) 시카고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북부 미네소타주에서 지내면서 자연보호에 앞장서 왔으며 자연을 배경으로 한 글들을 써온 문필가이다.The Singing Wilderness (1956), Songs of the North,) Spirit of the North: The Quotable Sigurd F. Olson.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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