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단편   ▒  

톨스토이의 <달걀크기의 씨앗>  

<늘푸른나무/문화산책/톨스토이의 '달걀크기의 씨앗/2009년 4월>

<이달의 단편>달걀 크기의 씨앗
레오 톨스토이

“저의 밭은 하나님의 땅이었습니다.
쟁기질을 하는 그곳이 곧 밭이었지요. 땅이란 자유였습니다.
그땐 제 땅이라는 것을 몰랐었지요.
제가 제 것이라 여겼던 건 오로지 제 노동뿐이었습니다.”

어는 날 산골짜기에서 놀던 아이들이 가운데 줄무늬가 있는 씨앗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크기가 달걀만한 이상한 물건이었는데,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기이하게 여겨 5코페이카에 사서 성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왕에게 바쳤다.

왕은 현인들을 불러모아 그 물건을 보여주고, 그것이 씨앗인지, 달걀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일렀다. 현인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물건은 창턱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암탉 한 마리가 들어와 이리저리 쪼아 보다가껍질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씨앗이라는 것을 알았다. 현인들은 즉시 궁궐로 들어가 왕에게 고했다.?

“그것은 라이보리 씨앗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몹시 놀라면서, 현인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려 그 씨앗이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알아보라고 일렀다. 현인들은 이마를 맞대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한편, 수많은 책들을 뒤져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아무런 해답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왕 앞으로 나아갔다.

“죄송하오나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는 이 씨앗에 대해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농부들을 불러 알아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그래서 왕은 시종을 보내 나이 든 농부를 한 사람 데려오게 했다.

이고 농부 하난가 왕 앞으로 불려왔다. 이는 다 빠지고 얼굴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늙은 농부였다. 농부는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왕 앞으로 나아갔다. 왕은 농부에게 씨앗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농부는 이미 눈이 어두워 손으로나 간신히 그것을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왕이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게, 이 씨앗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그대는 알고 있는가? 전에 그대의 밭에 이런 씨앗을 심은 적이 있는가? 혹은 지난 날 그대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 어디서 이런 씨앗을 사 본 적이 있는가?”

농부는 귀마저 멀어 왕의 말을 겨우 알아듣고 가까스로 그 뜻을 이해했다. 그는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런 곡식을 심어 본 적도 없고, 거두어들인 적도 사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농사를 짓던 무렵에는 곡식의 낟알이 이것보다 훨씬 자잘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 . .. 제 아버지께 한 번 여쭤봐야겠습니다. 아버지라면 어디서 이런 씨앗이 생겨났는지 혹 아실지도 모르니까요.”

왕은 사람을 보내 농부의 부친을 데려오게 했다. 이윽고 농부의 아버지가 왕 앞으로 불려왔다. 그 역시 쪼글쪼글한 늙은이로 지팡이 하난를 짚고 있었다. 왕은 늙은이에게 씨앗을 보여주었다. 이 늙은이는 아직 시력이 온전한 편이라 어렵지 않게 씨앗을 알아보았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노인장, 그대는 이런 씨앗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아는가? 그대의 밭에 이런 걸 심어 본적이 있는가? 혹은 그대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 어디서 이런 씨앗을 사 본 적이 있는가?”

늙은이는 귀가 좀 어둡기는 했지만, 아들보다는 말귀를 잘 알아 들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이런 곡식을 심어 본 일도 거둬들여 본 일도 없습니다. 물론 어디서 이런 걸 사 본 적도 없습니다. 저희들 시절에는 아직 돈이라는 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땐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농사지은 곡식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자라면 가진 것을 서로 나누었지요. 저는 어디서 이런 씨앗이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물론 제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곡식의 낟알이 요즘 것보다야 굵고 실했지요. 소출도 지금보다는 많았고요. 하지만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제 아버지로부터 들은 애깁니다만, 당신이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제가 농사를 짓던 때보다 소출이 훨씬 많고 곡식의 낟알도 훨씬 더 굵었다고 하드군요. 제 아버지께 한 번 물어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왕은 늙은이의 아버지에게로 다시 사람을 보냈다. 오래지 않아 그 노인이 왕 앞으로 불려왔다. 노인은 지팡이도 짚지 않고 가벼운 걸음으로 왕 앞에 나와 섰는데, 눈과 귀도 밝고 말소리도 또렷했다. 왕은 노인에게 다시 씨앗을 보여주었다. 노인은 씨앗을 요모조모 꼼꼼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이런 옛날 곡식은 오랫동안 구경해 보지 못했는데 . . .”

노인은 씨앗을 조금 물어뜯어 잘근잘근 씹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노인장, 어디 한 번 말해 보라. 도대체 어디서 이런 씨앗이 생겨났는가? 그대는 이런 곡식을 밭에 직접 심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그대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 누구에게 선가 이런 걸 사 본 적이 있는가?”

노인이 대답했다.
“제가 농사를 짓던 무렵에는 어디서나 이런 곡식이 생산되었습니다. 저는 평생 이런 걸 먹어왔고, 또한 이것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디서 이런 씨앗을 샀는가? 그리고 그걸 그대 밭에 직접 심어 본 일이 있는가?”

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들 시절에는 곡식을 사고 파는 따위의 죄악을 궁리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돈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지요. 곡식이라면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 직접 심기도 하고, 거두어들이기도 하고, 타작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말해 보라. 노인장, 그대는 어디에 이런 곡식을 심었는가? 그대의 밭은 어디에 있었는가?”

노인은 말했다.

“저의 밭은 하나님의 땅이었습니다. 쟁기질을 하는 그곳이 곧 밭이었지요. 땅이란 자유였습니다. 그땐 제 땅이라는 것을 몰랐었지요. 제가 제 것이라 여겼던 건 오로지 제 노동뿐이었습니다.”

“두 가지만 더 물어보겠네. 옛날에는 이런 씨앗이 생겼는데 어째서 지금은 생기지 않는가? 그리고 그대의 손자는 두 자루의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그대의 아들 역시 지팡이 한 자루를 짚고 다니는데, 어째서 그대만이 그처럼 건장하며, 눈과 귀도 밝고, 이도 튼튼하고, 말소리도 그토록 뚜렷하며 상냥한가? 어째서 그런가? 말해 보라, 노인장. 이 두 가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까닭인가?”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그 까닭은 바로 이렇습니다. 요즈음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힘써 살아가기를 그치고 남의 것을 넘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땀 흘려 얻은 제 것만을 가질 뿐 결코 남의 것을 탐내는 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톨스토이 지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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