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 천천히 여유있게
한적한 시골에 느긋한 저녁을 즐기러 가는 참이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손수 기른 채소로 전을 부치고 된장, 쌈 . . . 시골 인심이 물씬 묻어나는 건강식, 요즈음 말로 슬로우 푸드(Slow Food)를 먹으러 가는 길.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과속 티켓을 받은 겁니다. 생각해보니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느긋한 저녁을 먹으로 가는 길에 과속이라니. 하지만 이게 차에 앉는 사람의 습관적 본성입니다. 급한 일도 아닌데 가속 페달을 밟게 됩니다. 핸들을 잡는 순간, ‘어떻게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절로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길이 막혀도 조급증이 발동, 짜증이 납니다. 갓길에 난폭운전, 신호 무시, 정적 . . . 가능한 나쁜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됍니다. 이러는 순간 우리 뇌 속엔 경쟁, 공격 호르몬이 분비, 온몸에 비상이 걸립니다. 이쯤 되면 사고 일보 직전, 아슬아슬합니다.
운 좋게 사고가 안 난다 해도 우리 몸이 감당을 못 합니다. 차는 과속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몸은 기계처럼 고속화되진 않습니다. 심장이 1분에 천 번을 뛸 순 없는 일, 차와 우리 심신 사이에 균형이 깨어지게 됩니다. 이때 처방은 잠시의 호흡을 위해 쉬는 겁니다. 찬바람도 쐬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머리를 식히는 겁니다. 그리고 주변도로 정보를 수집, 지도를 끄집어내어 빠른 길을 다시 구상하는 겁니다.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이걸 충고라고 해야 하는 나 자신이 쑥스럽습니다.
우리 산엔 지난 겨울, 정상에서 갑자기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순간적으로 길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하산하다 보니 아무래도 옳게 내려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전혀 방향감각이 서지 않습니다. 급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뒤따라오던 노인 한 분이 조용히 입을 엽니다.
“서두르지 말게. 좀 쉬었다 가세나. 눈경치도 즐기면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고 어느 한 길을 정해 내려가세. 산은 아래로만 가면 되는걸세. 길을 잃었단 생각을 하니 더 급해지는 걸세. 길어야 30분 아닌가. 눈길은 미끄럼 타고 내려가면 더 바르고 신나는 일 아닌가.”
그러더니 본인의 모자를 깔곤 마치 앉은뱅이 스키를 타듯 신나게 내려갑니다. 와! 일행의 탄성이 터졌습니다. 그제야 모두의 얼굴엔 안도와 함께 웃음이 감돌았습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머리가 유연해져서 발상의 전환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껏 폭풍과 함께 휘몰아치는 빗속, 깊은 눈길을 그냥 앞만 보고 헤쳐 걷기에 급급했습니다. 달리 생각할 여유도 없고 길은 외길,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젠 좀 현명해야겠습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 넘어야 할 많은 시련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때론 멈춰 설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주위를 둘러 보고 내가 온 길, 앞으로 갈 길도 점검해보고 바람 방향, 눈 깊이도 재보고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안전하고 확실한 길인지 생각해보고 가야겠습니다.
이시형의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이지북 간 에서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천천히 여유있게/이시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