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 감상   ▒  

초토(焦土)의 시-구 상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1년 6월>

구상의 「초토(焦土)의 詩」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카톨릭 지성인인 구상(1919-2004) 시인의 15편으로 구성된 연작시「焦土의 詩」가운데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시로 6.25 한국전쟁의 체험을 주제로한 대표적 시입니다. 6,25 한국전쟁의 비극성이, 그 충격적 체험이 냉철한 지성인 구상으로 하여금 절제의 성을 무너뜨리고 ‘恩怨’의 사연을 품은 적군의 죽음과 그 무덤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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