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 감상   ▒  

오월-피천득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1년 5월>

오 월 -피 천 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립다.

스물한 살의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득료애정통고(得子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한국 수필문학계의 대표로 꼽히는 피천득 님은 오래동안 서울대 교수로 봉직하면서 <인연>, <수필> 등 주옥같은 수필들을 남겼습니다. 5월을 특히 좋아하였던 님은 2007년 5월 이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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