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 감상   ▒  

행복-유치환  

<늘푸른나무/한국시 감상/2009년 11월>

행복 -청마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 곁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들이 자라날때에는 너무나도 익숙하였던 우체국 풍경이 다시 떠오르면서 유치환이 이 시를 쓴 때가 어쩌면 요즈음 같이 조금은 으스스한 늦가을이 아니었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감사절이니, 크리스마스니 하면서 또다시 을시년스러우면서도 마음은 분주해지는 계절. 금년에는 "사랑하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써서 띠울 마음의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청마 유치환(1908-1967)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교사생활을 거쳐 1931년 <문예 월간>을 통해 시인으로 데뷰. 인생파 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생전에 1,000여편의 시를 썼다고 하며 <청마시집(1954년)>을 비롯하여 14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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