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2(금)
왜승(倭僧) 현방(玄方) -성호 이 익- 인조(仁祖) 기미년 여름이다. 일본승려 현방이 통신사를 통하여 조선에 오고싶다는 청을 했다. 조정에서는 그의 입국을 허락, 현방은 교자를 타고 입경했다. 병조(兵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8년 9월>

왜승(倭僧) 현방(玄方)
-성호 이 익-

인조(仁祖) 기미년 여름이다. 일본승려 현방이 통신사를 통하여 조선에 오고싶다는 청을 했다. 조정에서는 그의 입국을 허락, 현방은 교자를 타고 입경했다. 병조(兵曹)에서는 환영연을 베풀고 현방을 맞이했다. 현방이 말하기를 “조선이 북쪽 오랑캐의 침략을 받았으니 의(義)로 보아서 원조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이라”하고 이 일을 중국에 보고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옛날에 조선서는사람을 일본으로 보내어 학문을 가르치고 또 음악을 가르쳤다. 그 음악을 고려집(高麗集)이라고 일컬어 지금도 천황의 궁중에서 연주하고 있다. 조선과 중국은 가족의 사이와 같이 친근한 나라로서 불교가 성왕하고 있다는데 나는 불교의 진리를 전수하고 싶다” 하였다. 그러나 접대관은 현방의 말을 무시하고 “지금 우리나라는 유교를 전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불교는 버린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현방이 말하기를 “얼마 전에 내가 만나본 松雲선사는 훌륭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들은 접대관은 “송운은 이미 죽었다. 지금 그를 계승할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현방은 이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병조가 베푼 환영연을 받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나는 이일에 대하여 환멸을 느꼈다. 불교를 전수해 가겠다는 청을 거절했다는 것이 합리(合理)할런지는 알 수 없으나 예억(禮樂)을 배우고 싶다는 것에 잇어서는 얼마든지 권장하고 지도해야 좋았으리라고 생각한다.그런데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인가? 거기에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 다만 예문과 음악을 제재로 지도할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그리고 소운선사를 게승할 사람이 없다고 대답한 것을 보면 더욱 무식을 탄로시키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토가 넓다 그리고 토지가 비옥하고 병기가 발달이 되어 있고 군사는 잘 단련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나라다. 임진란을 치룬 후로 그들도 생각을 달리하여 150년에 이르도록 아직 국경에 어떤 변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여기서 앞으로 영원히 무사하히라고 단정하겠는가? 저들은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외국의 침략을 별로 받은 적이 없다. 그것은 지리적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 나라에서는 지방적으로 분쟁이 있었다. 그것은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미 통합이 되면 문화면에 주력하는 동시에 병무에 대한 일은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일본국민도 묘화사상이 다분히 있다 그리하여 많은 서적을 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에 있어서는 아직도 어린 그들이다. 모름지기 우리는 이와 같은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을 감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하여 그들의 무무한 풍속을 개혁하고 문예를 부흥시키면 한낱 두 나라의 이익만이 아닐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문화적 매개가 곧 통신사의 맡은바인 것이다. 그러므로 통신사는 언제나 재주와 학문이 넉넉한 사람을 선출하여 모든 수작을 하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일본과의 국교가 선왕때 부터 관계해온 전례典禮)인데 금번에 온 사신에 대한 처사는 크게 신의를 상실했다. 응당 사신이 오고가는데 있어서 번잡한 소비는 제거하고 기만과 야유의 행동을 엄금하면 정이 서로 통할것이고 의로서 서로 대할것이다. 유구한 국제적인 계획이 여기에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현방이 요청한 것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전례에 없는 것이 아니지만 한낱 중으로 거만하게 교자를 타고 또 예문에 대해 항의를 당한 것은 커다란 모욕을 입은 것이다. 당시에 중으로서의 처신에 대하여 한 사람도 언급하지 못한 것이 또한 한스럽다,
 
(이익의 <성호패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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