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12(화)
도깨비와 허께비에 감사하는 글 -정 도 전  
<늘푸른나무/ 문화산책/선비들의 지혜를 찾아/2018년 6월>

도깨비와 허께비에 감사하는 글 -정 도 전 

회진은 큰 산과 무성한 수풀이 많고 외따른 바닷가라 텅 비어 집들이 없다. 

아지랭이가 찌는듯 하고 음기(陰氣)가 촉촉하고 침침하여서 비가 오기가 쉽고 산과 바다의 음침한 기운과 초목의 토석의 경기가 음하고 이것들의 음결이 변하여 도깨비와 허깨비들이 되니 , 사람도 귀신도 아니고, 저승 것도 이승 것도 아니나 역시 한 물건이다. 

어느 때 정 선생이 혼자 방안에 앉았으려니 낮은 길고 오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막대를 짚고 문을 나가 뒷짐을 지고 멀리 바라보니, 산천은 첩첩하고 초목은 서로 접하였는데 하늘이 첩첩하고 들이 어두워 가득히 쓸쓸한 풍경과 음기가 사람을 엄습하여 온몸이 노곤하다.

다시 방안으로 돌아와도 답답하고 어두운 심사뿐이다. 피곤해서 잠이나 잘까 하고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더니 잠이 들락날락하는 곁에 아까 말한 도깨비 허깨비 동속들이 몰려와 서로 야유하고 중얼거리며 오락가락 부산하다. 

기뻐하는 듯한 놈도 있고 , 슬퍼하는듯한 놈도 있고, 웃는듯한 놈, 뛰놀며 날치는 놈, 누우며, 자빠지며, 획 기대는 놈, 가지각색이다. 

선생이, 그 성가시게 떠드는 걸 싫어하고 또 그 시위스러움을 미워하여 손을 들어 휘돌아대니, 갔다가는 되돌아 온다. 화를 내어 꽥 소리치자 문득 잠이 깨었는데 아까의 형상과 자취들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텅 빈 방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선생이 정신 아득하고 마음에 두려워 멍하니 무엇을 잃어버린듯 하다가 한참만에 마음을 안정하고 정신을 모아 생각을 깊이 하며 조용한 기운과 가는 숨결로 반쯤 졸고 앉았노라니 다시 또 그 물건들이 떼를 짓고 짝을 지어 꾸역꾸역 모여들어 전과 같은 짓을 하기 시작한다. 이에 선생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음물(陰物), 나와 동류가 아닌데 무었때문에 이곳에 오는고? 또 너희들이 무엇때문에 슬퍼하고 무었때문에 슬피 우는고?”

이 말이 끝나자 어떤 놈이 나타나 대답하는듯 하다. 

“서울이나 큰 고을에 저택이 즐비하고 관아가 날로 쓰이는데는 사람 사는 곳이요 음침한 폐허와 쓸쓸한 황야는 도깨비들이 번식하는 곳이니 그대가 우리에게 온 것이지, 우리들이 그대를 찾아 온 것이 아닌데 어째서 우리를 가라고 하는가?”

그대가 힘을 헤아리지 않고 기위를 범하여 밝은 임금이 다스리는 좋은 시절에 쫒겨났으니 그것이 우습지 않은가?힘써 배우고 뜻을 굳게하여 똑바로 행하고 곧게 행하다가 마침내 화에 걸려 멀리 귀양와서 스스로 발병할 길이 없으니 그것을 보고 슬퍼함이로세.

우리들은 음침한데 처하여 세상이 우리들을 알 까닭이 없는데 그래서 학(學)은 깊은 것을 끌어내고 감춘것을 더듬어서 어떠한 작은 것도 모조리 다 알았던고로 이제 우리가 이 머나먼 시골 궁벽한 땅에서 상종하게 되었으니 이 아니 기쁜일인가?

또 그대가 보통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먼 곳에 떨어져 있으니 그대를 만나는 자는 한눈을 팔고 그대와 말하는 자는 마음이 떨려 모두 손을 저으며 물러 서고, 팔을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치는데 오직 우리는 그대가 온것을 기뻐하여 더불어 노닐거늘 이것을 잘못됐다고 배척하니 그대는 우리를 버리고 누구와 행하려는가?”

선생은 그 말을 듣자 부끄러워하고 또 그 뜻을 고맙게여겨 글로서 사례하니 그 글이 다음과 같다. 

산 기슭과 바닷가에 날씨가 음침하고 초목이 어두워라!
텅 빈 고장에 나홀로 사니, 너를 버리고 누구와 함께 놀리.
아침, 저녁 함께 지내고 봄 가을 없이 노래를 주고 받네.
때와 세상을 다 버렸거늘 다시 무엇을 구하리
초야에 어정거리며 너와 더불어 노니노라.
(東文選에서)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