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3(화)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이규보의 광변(狂辨-미친짓에 대한 변명)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8년 1월>

광변(狂辨-미친짓에 대한 변명)-이 규 보

세상 사람들인 모두 거사(居士-필자 자신을 가리킴)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사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

이와 같이 미치지 않은 사람을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아마도 미친 것보다 더 심한 병이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거사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진실로 거사의 미친짓을 보고 그러는지, 아니면 듣고 그러는지 모를일이다.

발가벗은 알몸뚱이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일이 있어 거사를 미쳤다고 하는가? 이빨이 상하거나 말거나, 피가 나거나 말거나, 모래와 자갈을 씹어 뱉는 일이 있어 거사를 미쳤다고 하는가?

우러러 하늘을 쳐다보고 놀래며, 고개 숙여 땅을 바라보고 지껄이며, 머리를 흐트리고 까닭없이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잠방이를 벗어 들고 아무데나 쏘다니는 짓이 있어 거사를 미쳤다고 하는가?

차가운 겨울에도 차가운줄을 모르며 더운 여름에도 더운 줄을 모르고, 바람을 움켜 잡으려 하고 달을 잡으려 하는 일이 있어 거사를 또한 미쳤다고 하는가?

이상과 같은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말할 것 없지만 그런 것이 없는데도 미쳤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세상 사람들이여! 참 딱하고나. 한가로이 집에 있을 때에는 용모나 언어가 사람 그대로이고 갓을 쓰고 의복을 입는 것이 또한 사람 그대로이지만, 어찌하다가 벼슬 하나나 얻으면 한 개의 손을 가지고 상하로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이 움켜잡으려 하고 ,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중용을 지킬줄 모르며, 보는 데만 필요한 눈을 듣는 데까지 써먹고 몸은 동서로 갈려있어 어수선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러한 상태에까지 도달했으면서도 본성을 찾을줄 모르고 마침내 고삐를놓아 버리고 굴레를 상실한채 자빠지고 엎어진 뒤에 제정신을 차리고 있으니, 이것은 겉으로는 장엄한 것 같지만 안으로는 미친사람인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미친것이 이상에서 말한것과 바와 같이 알몸둥이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며, 자갈과 모래를 씹는 그런 미친사람보다는 더한 미친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가련하다. 세상 사람들이여!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미침병이 있으면서도 그 병을 고칠줄을 모르고 있다. 자기의 병을 고치지도 못하면서 어느 겨를에 거사의 미쳤음을 비웃는단 말인가?
다시 말하거니와 거사는 결코 미친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나는 그 행동은 미친듯이 하면서도 그 의지만은 꿋꿋하게 하는 사람이다.

*이규보(李奎報, 1168년∼ 1241년)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황려(黃驪). 초명은 인저(仁),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백운산인(白雲山人)이다. <동국이상국집》으로 유명하였으며, 고주몽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서사시 동명왕편의 저자이기도 하다. 무인집권시에 화를 면한 소수 문인들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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