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3(금)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색 유(色喩)-이 규 보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7년 10월>

색 유(色喩)
이 규 보

세상에는 색(色)에 미혹되는 사람들이 있다. ‘색’이라 하는 것이 紅色이더냐, 白色이더냐, 아니면 靑色이더냐? 해와 달과 구름과 안개와 초목과 새, 짐승도 다 빛깔이 있다. 이것에 미혹된단 말인가? 아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금옥과 품위있는 의상과 드높고 웅장한 궁실과 섬세하고 찬란한 비단은 모든 ‘색’’중의 가장 아름답과 귀한 것인데, 이것에 미혹된단 말인가? 그것도 거의 아니다. 내가 ‘색(色)”이라고 일컫는 것은 사람의 ‘색’을 말하는 것이다.

까만 머리칼과 하얀 살결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마음을 풀어 눈동자를 구르며 한번의 웃음을 가지고 나라를 움직이는 ‘여색(女色)”이 있는 것이다.

여색을 보는 사람이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미혹하게 되는 것이며? 만일 그 여색을 사랑하게 되는 날에는 형제도 친척도 몰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은 사랑했던 것도 절제를 하고 귀여워했던 것도 경게를 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아, 듣지 못했느냐? 아리따운 눈을 칼날이라 하고, 눈썹의 꼬부라진 것을 도끼라 하며, 두 볼이 몰록한 것은 독약, 살이 매끄러운 것은 안보이는 좀벌레라 하는 것이다. 도끼를 가지고 치며, 칼을 가지고 짜르며, 보지 못한 가운데 좀이 쓸고, 독약을 가지고 고생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여색의 해(害)인 것이다. 세상에 이것보다도 더 해가 되는 것이 드물다. 이와 같은 해적(害敵)을 이기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더냐? 그러므로 도적이 도적에게 죽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도 또다시 가깝게 해서 되겠는가? 모름지기 내게 미치는 해를 용감히 물리쳐야 할 것이다.
여색의 해가 여기에만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여색이 있으면 가산을 털어서라도 가지려 하는 것이고, 여색의 꾀임을 당하면 비록 호랑이 앞이라도 서슴치 않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호색(好色)을 두면 많은 사람들이 시기하고 미색(美色)을 두면 명예가 떨어지는 것이다.

크게 말해서는 그 해악이 군주(君主)에까지 미치고 적게 말해서는 향사(鄕士) 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망치는 것이 모두 여색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周) 나라에는 포사가, 오 나라에는 서자가, 진후주의 여색과 당현종의 양귀비 가 다 아양떨고 군주를 현혹시켜 미래의 화를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주나라도 이것으로 혼란을 겪었다. 오 나라도 당 나라도 다 그랬다. 녹주의 아양은 석숭(石崇)을 망하게 하였고, 손수의 요사함은 양익을 미혹시키지 않았던가. 이밖에도 붓으로 열거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슬픈일이다. 내가 장차 막모(추녀의 이름)와 같은 추녀의 상을 만들어 이 세상의 모든 여색들의 요염한 얼굴을 여기에다가 땜질을 시킨 뒤에는 칼로 화부(음란한 사람)의 눈을 도려내고 정직한 눈으로 바꾸며, 넓고 두툼한 철상을 만들어 음탕하고 사치하는 자들의 뱃속에 집어 넣으면 제아무리 향기롭고 아름다운 지분이 있다고 한들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록 모장과 서시와 같은 미인이 있다고 한들 막모나 다름이 없을 것 아닌가. 그러면 세상에 무슨 미혹을 당하는 일이 있겠는가.

(李相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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