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3(수)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서-재용변증설(財用辨證說)-이규경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7년 8월>

재용변증설(財用辨證說)-이규경

*이규경(李圭景, 1788년 ~ 1856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字)는 백규. 서적을 읽고 천문·지리·역사·문학·종교·서화·풍속 등 모든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와 《오주서종박물고변》 등 업적을 남겼다.

재물은 천지의 지극한 보배요 사람의 대명으로써 잠깐이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될 것이다. 생산은 부지런히 하고 모으는데는 검소하며 수확은 많이하고 쓰기는 적게하면 재용이 항상넉넉할 것이다. 재용이 넉넉하면 사람이 항심(恒心)이 있고 재용이 넉넉하지 못하면 사람이 항심도 없는 것이다. 항심이 있는 사람은 선한 일만을 하게 되고 항심이 없는 사람은 악한 일을 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옛적에 성왕이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먼저 재산이 넉넉하게 하여 이용(利用), 후생(厚生)에 조금이라도 손색이 없게 하였다. 대본은 농업인 것이고 농업은 재물의 근원으로서 농업을 영위하는 방법은 천시(天時)에 따라 지의를 이용하여 인력을 가하는 것뿐이다.

만일, 하늘은 적당한 시기를 주었는데 그 시기를 따르지 않고 땅은 얼마든지 밭을 이용하게 해주었는데 그 밭을 묵히고 있으며 자신이 얼마든지 능력이 있는데 손발을 게을리하면 성인(聖人)이 다시 탄생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백성은 먹는 것을 가지고 하늘을 삼는다. 먹는 것은 재용에 있고 재용은 농업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라도 농업을 영위하지 않으면 이것은 역천(逆天)이다. 역천을 하는 사람이 어찌 生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재물은 사람이 아니면 생산할 수 없는 것이고 재물이 아니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것, 財와 人은 언제나 하나로서 잠깐이라도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일찌기 유풍 67월의 시를 읽어 본 일이 있다. 그때의 주나라가 얼마나 농업을 숭상했는가를 역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부터 김매고 거두고 또는 지붕을 덮는 것까지 국왕의 정성과 힘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제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작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밥을 지어서 배부르게 먹을 것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들은 소리개가 제맘대로 하늘을 날으듯, 고기가 물에서 놀듯, 그 즐거움을 형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태평성대의 백성인 것이다.

그 뒤로는 세상이 변하여 백성이 직업을 잃고 영양이 실조되어 얼굴이 윤기가 없으며 호구도 할 자료가 없고 몸을 가릴 방법도 업는데 , 세금과 부역은 없는날이 없어 아들은 물건을 팔고 아내는 장사를 시켜 사방으로 유산하다가 어떤 구렁텅이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이들은 비록 농사를 힘써 재물을 생산하려 한들 할 수 있겠는가?

이로부터 이 지상에 낙토와 낙원이 없어졌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많은 백성이 상공업을 하기 시작했다. 상공업은 영농 다음으로 치는 것이지만 이익에 있어서는 본업인 경농보다 더 많다. 이리하여 거액의 돈을 가진 부자가 부쩍 늘게 되었다. 이 부자들은 호화스럽기 짝이 없어 그 권세가 임금을 능가할 만하고 밭이며, 논이며, 말이며, 소가 자기 것 아닌 것이 없으며 한쪽에선 아까운 곡식이 썪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자는 궁둥이를 디밀 곳도 없고 송곳 하나 꽃을 땅이 없어 풍년이 들어도 주림을 참지 못하고 날이 따스해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하늘도 이들을 살리지 않고 사람도 이들을 구제하는 이가 없어 마침내 죽어 넘어져도 돌아보는 사람 하나도 없다.

진실로 돈을 벌 생각이 있으면 근검한 것으로 마음을 갖고 저 사람이 버린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을 법으로 생각하고 시기를 놓치지 말고 먼저 서두는 것을 능사로 하면 어떤 부자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도주가 거부가 된 것도 여기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는 말하기를 부귀는 하늘에 있는 것,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귀를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부지런과 게으름에 있다고 본다. 지나친 욕심은 자신을 망친다. 만일 수삼항의 밭을 가지고 있으면 한쪽에는 마를 심고,한쪽에는 야채와 과일을 심으며 달과 돼지를 치고 , 집 주위에도 수목을 심으며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길쌈을 하여 수입에 따라 지출하고 배를 채우고 추위를 막으며나라에 바칠 세금은 남보다 먼저 내고 자녀들 혼사는 때를 잃지 말고 제사와 접객에도 禮대로 하고 양생, 송사에도 유감이 없게 하면 일가(一家)의 살림이 만족할 것이다 속담에 “하늘은 농사를 힘쓴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말이 적언이 아니겠는가?

물을 생산하는 방법을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한 나라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도 이렇게 하면 백성들의 생활이 원만하여 태평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같은 농사에 힘을 써보고 싶으나 생산해 낼 땅이 없고 글을 읽으며 생을 보내고 싶으나 읽을 곳이 없으니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패군이 장군처럼 감히 병법을 의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난을 겪은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이므로 이같은 분개스러운 글을 써서 뒷사람에게 보인다.

(五洲行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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