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11(금)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옥갑야화(玉匣夜話)<그 2>- 박지원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7년 7월>

옥갑야화(玉匣夜話)<그 2>- 박지원

박지원(朴趾源, 1737년 ~ 180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이다. 호는 연암(燕巖), 저서로는 <열하일기>와 <연암집> 등이 있다.



비장들은 또 당성군의 얘기를 한다. 당성군은 홍순언이다. 그는 명나라 만력때에 이름난 역관이었다. 홍 역관(譯官)은 황성(皇城)에 들어가서 있는 동안에 관(館)에서 기생들과 놀게 되었다. . 그 관에는 많은 기생들이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 따라서 화대를 준다. 그 중에 천금(千金)의 화대를 부르는 미녀가 있었다. 그때의 천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홍순언은 대뜸 그 천금의 화대를 요구하는 미녀를 청했다. 그녀가 들어왔다. 28청춘의 소녀로서 과연 홍순언으로서는 아직 보지 못했던 그런 미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괴이하게도 홍순언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제가 거액의 화대를 요구한 것은 지금의 천하에 모두 인색한 사나이뿐인데 진실로 천금의 돈을 뿌릴 남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그 돈을 내는 사람이 없으면 내 몸은 더렵혀지지 않을 것, 여기에 일루의 요행을 걸고 다행이도 순간의 욕을 면할 수 있을까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며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는데 이 관의 주인은 내 마음을 모르고 자기로서는 천하의 의기남자를 구하여 첩노릇이라도 하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천금을 가지고 대든 남자가 없었는데 오늘 다행히 천하의 의기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외국 사람, 나를 귀국으로 데리고 가고 싶지만 법이 허락하지 않고, 나는 한번 몸을 버리면 다시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하는 것이다.

홍순언은 매우 딱하게 생각하고 그가 이 창관(娼館)에 들어오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저는´남경 호군대랑 모(某)의 딸로서 아버지가 장물에 잡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몸이라도 팔아서 아버지의 빛을 갚아 볼까 하고 이렇게 창관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홍순언은 크게 놀랐다. 환경이 그렇게 된 것을 알지 못했다고 도리어 사과하고 그 빛을 갚으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고 물었다. 그녀는 2千金이라고 대답한다. 홍순언은 두 말 하지 않고 2천금의 돈을 즉석에서 내놓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녀는 처음에 당황하다가 홍순언의 호탕하고 의분에 넘치는 마음을 짐작하고 백 번을 절을 하면서 은혜가 아버지와 같다고 고마와 했다.

순언은 그녀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얼마후에 홍순언은 다시 역관으로 중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국의 국경에 들어서자 혼순언의 일행을 보고 많은 병졸들이 혹시 홍순언 역관이 아니냐고 묻는다. 혼순언은 퍽으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대로 그의 일행은 황성의 근처까지 당도했다. 길 왼쪽으로 웅숭깊게 장막을 마련해 놓고 병졸들이 홍순언 앞에 달려와서 “저희들은 석상서(石尙書)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하고 홍순언은 석상서의 저택으로 모시는 것이다.? 석상서는 홍순언에게 절을 하고 맞아들이면서 “은장(恩丈,은혜스러운 어른)이 오셨군. 公의 딸이 공을 기다린지 오래라오”하고 손을 부여잡고 내실(內室)로 들어갔다.

한 미부인이 성장을 하고 당상에서 절을 한다. 홍순언은 황공하여 몸둘 곳을 몰랐다. 석상서가 웃으면서 “장인께서 딸의 얼굴을 모르시는가?”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수년 전에 창관에서 만났던 묘령의 처녀였다.

그녀는 그때에 창관에서 나와 자기 아버지를 구해 주고 석상서의 게실(繼室)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귀부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분을 생각하지 않고 손수 비단을 짜서 <보은(報恩)>이라는 두 글자를 수놓아 두고 홍순언을 기다리고 있다가 지금 홍순언을 만나 은혜를 갚게 된 것이다.

홍순언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부인이 짠 보은철과 기타의 비단, 금은을 선물로 받아가지고 돌와왔다. 그 후에 임진란을 당했다. 석상서는 병부상서(兵部尙書)조정에서 조선을 원조하기를 반대하였는데도 굳이 출병을 주장하여 조선을 원조하게 하였다. 그는 조선은 의로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암집(燕巖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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