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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14(금)
<선비들의 지혜를 찾아>-접과기(接菓記)-이 규 보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7년 6월>

접과기(接菓記)-이 규 보

세상의 갖가지 일 중에서 처음에는 사람을 기만하는 것 같다가 마침내 <참>으로 돌아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과목(果木-접붙이는 일)이 아닌가 한다.

연전에 전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접목을 잘하는 사람이다. 하루는 선친이 그를 불렀다. 집목으로 된 배나무 두 그루를 접붙이게 했다.

전씨는 두 나무를 모조리 잘라내고 품종이 훌륭한 배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여기에 접착시키고 진흙으로 정성스럽게 싸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노란 새싹이 솟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보고 나는 너무나도 괴이하게 여겼었다. 그러나 어제보다 오늘이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었다. 여름에는 잎이 만발하여 무성하고, 가을에는 좋은 열매를 맺었다. 나는 이때에 비로소 <참>으로 돌아오는 것을 깨닫고 처음에 가졌던 모든 의아심을 풀었다.

선친이 돌아가신지 9년이 지난 오늘에 저 배나무를 바라보며 과일을 먹을 적마다 근엄하시던 그 얼굴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어느때에는 나무를 부여잡고 눈물을 머금은 채 우두커니 서 있곤 하였다. 무한한 감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옛날 사람은 자기가 사모하는 상관이 지나가다가 아가위나무 밑에서 잠간 쉬어 갔다고 하여, 그 나무를 꺾지 못하게 하고 사랑하였는데, 하물며 내 아버지가 손수 가꾸어서 나에게 남겨 주신 것에 경건한 마음을 표하는 데 있어서, 아가위 나무에 대한 백성들의 그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 과일을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알이라도 응당 무릎을 꿇고 먹어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이렇게만 생각해서도 되지 않을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이다. 선친이 나에게 남겨 주신 것이 그것을 잊지 말라고만 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악(惡)에서 선(善)으로 옮겨오게 하신 무언(無言)의 교훈인 줄 안다.

나는 저 나무처럼 선으로 지향할 것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부족한 대로 내뜻을 이상과 같이 펴서 늘 몸과 마음을 경계하고자 한다.

(李相國集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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