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예술-조속의 '노수서작도'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4년 4월>

한국의 예술 4 <조속(1595-1668)의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조선 17세기


113.5x 58.3cm
비단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씨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문인화가로 아버지는 병조참판을 지낸 조수윤이고 아들 역시 문인화가로 알려진 조지운이다.

광해군 때 부친이 억울하게 죽자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훈을 세웠으나 모든 훈명과 공직을 사양하고 은거하던 가운데 효종이 현감으로 임명하여 덕산 현감을 거쳐 진선(왕자들을 교육하는 궁전학원의 직책)을 역임하고 상의원정(尙衣院正-궁전에서 관복을 관리하는 직책))에 이르렀다.

그는 풍채가 맑고 깨끗하였을 뿐 아니라 지조가 높고, 또한 청빈하여 칭송을 받았으며 고금의 명화와 명필을 수집, 감상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서화 삼절(詩書畵三絶)’로 불리는 조속은 매(梅), 죽(竹), 산수와 더불어 수묵 화조(水墨花鳥)를 잘 그렸다. 특히 까치나 동물들을 소재로 한 수묵화조화에서 한국적 화풍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 이 분야의 대표적 화가로 꼽힌다.

<노수서작도〉는 조속이 비단 바탕에 먹으로 꽃과 새들을 그린 화조화이다. 조속의 대표적인 대작으로 언듯 보기에는 수묵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나뭇잎 등에 청색과 황색 등 부분적으로 담채(엷은 색깔의 물감)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가지 위에는 까치와 박새가 각각 한 쌍씩 그려져 있는데 오른쪽에서 아래로 둥글게 휜 가지 위에는 까치 한 쌍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 가지에는 박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지저귀고 있다. 활 모양으로 휘어진 나무의 원선을 중심으로 작은 가지들이 좌측 공간과 하단으로 뻗어 있다. 나뭇잎은 성긴 가지를 적당이 메워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중국 명나라 때의 화조화가(花鳥畵家)인 임량(林良)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섬세하지 못하고 까칠한 붓질과 도안의 형태들이 어울려져 서정적인 한국 특유의 정취가 느껴지는 화조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까치는 조선화에서 잘 등장하는 새로 이 그림에서도 윗 부분에 한 쌍의 까치를 그려 넣어 한국적인 특성을 더 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영모도들이나 조속의 다른 화조화들이 새 한마리나 한 쌍을 그린 것에 반하여 <노수서작도>에는 두 쌍의 새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한 마리는 약간 수집은듯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은은한 눈길을 보이며 조용히 그리고 은근히 정감을 들어내고 있는 덩치가 큰 까치들과 함께 까치보다 작은 몸매로 좀 떨어진 가지에서 적극적인 몸동작과 부리를 벌려 화답하는 새들을 대비시킨 조숙의 화조화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잘 들어나 있다 하겠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설 김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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