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Eliot의 황 무 지(The Waste Land) 에서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장영희 번역)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 .

부활절도 지난 4월의 어느날, 파릇 파릇 돋아나는 새순들을 소복히 덮고 있는 흰눈 덮힌 정원을 내다보며 엘리옷의 유명한 장시 '황무지'의 시작 부분인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이 시구는 4월이면 으례 한,두번은 듣게 되는 것이지만 막상 계속되는 시구를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것입니다. 남쪽으로부터 전해오는 꽃소식과 함께 화창한 봄기운이 흠씬 풍기는 한국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을때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학생데모나 4,19혁명이였지 자연이 다시 움트고 피어나야 하는 어려움은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카고에서, 4계절이 교차하는 변화무쌍한 날씨의 봄을 보내면서 4월을 꼼짝 없이 밖에서 지새워야 하는 나무나 꽃들에게 분명 '4월은 잔인한 달'이라 공감해 마지 않습니다. 엘리옷이 묘사하려고 하였든 것도 계절의 순환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힘든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였던듯 합니다. '망각의 눈'에 덮여 있든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하다는 것이겠지요.

새 생명을 출산하려는 산모가 겪어야만 하는 '산고(産苦)', 문화의 동토(冬土)에서 문화의 새싹들을 움트게 하려는 사람들이 겪어내야 하는 '인고(忍苦)', 자연에 못지 않게 '잔인한 4월'을 견디어 내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엘리옷은 미국 태생으로 영국에 귀화한 시인, 평론가, 극작가(1888-1965)입니다.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요. 영국의 형이상학적 시와 프랑스의 상징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현대문명의 퇴폐상을 시로 고발하려 하였습니다.(김 상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