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늘푸른나무/책소개/2013년 11월>

과학만능주의를 경고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32>

-올더스 헉슬리(1894-1863)의 50주기를 맞아

11월 22일은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세 사람이 세상을 떠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열광적인 흥분과 기대 가운데 미국의 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이오스왈드에 의하여 암살당한 것이 1963년 11월 22일이었고, 영국의 영문학자요 문인으로 사후에는 도리어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 사상가요 기독교 변증가로 인기를 끌고 있는 C.S.루이스 역시 같은 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영국의 소설가요 지성인으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위시해서 많은 작품들을 통해 시대정신을 비판하였던 올더스 헉슬리가 오랫동안 병상에서 씨름하다가 헉슬리의 처방으로 부인이 놓아주는 진통제를 맞고 세상을 떠난 것이 같은 날인 1963년 11월 22일 저녁이었다.

충격적인 케네데 대통령의 암살소식으로 매스컴들이 흥분한 가운데 당시 다른 두 문인들의 죽음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의 말년(1937년부터 죽기까지)을 고향인 영국을 떠나 로즈앤젤스에서 보낸 헉슬리의 경우는 더했던 것 같다.

올더스 헉슬리의 50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대표작 <멋진 신세계>을 소개 한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 과학만능주의 미래를 경고하다


최초의 시험관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이 1978년 영국에서 태어난 이래 생명공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유전자 조작, DNA 염기서열, 게놈(Genome) 등 생명공학 용어가 낯설지 않다. 생명공학이 미래에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구원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생명공학의 경이적 발달로 미래에 나와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들이 거리를 활보한다면 그런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그런 끔찍한 미래 사회를 일찍이 그의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예리하게 그려냈다.

1932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먼 훗날의 세계를 상정, 그때의 변모된 인간사회를 그려낸 ’공상과학소설’로 저자 헉슬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경제공황 그리고 전체주의 정권의 확대 등으로 서구사회가 격동과 환멸을 겪던 시절을 산 서구의 지성인이었다. 자연히 그는 시대정신에 비판적이었다. 과학문명이 전쟁을 불러오는 등 인간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면서 헉슬리는 진화론의 권위자이자 생물학자였던 조부(祖父)의 낙관적 진보주의를 물려받는 대신 적극적으로 비판의식을 키워나갔다.

소설 <멋진 신세계>는 포드(Ford) 기원 63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포드 기원이란 포드(Ford)회사가 ’T형 자동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서기 1913년을 기원 1년으로 한 것으로 소설 속 인류의 삶은 과학의 경이적인 발전 덕분에 가난, 질병, 불안, 고통, 죄의식, 슬픔 등이 제거되었고, 설령 기분이 우울해지더라도 ’소마’라는 약을 먹고 금세 쾌활함을 찾을 수 있다. 소설 제목이 가리키듯 지금껏 인간이 꿈꾸어왔던 ’멋진 신세계’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인류는 유전자 조작으로 100여 쌍의 쌍둥이가 공장에서 인공적으로 동시에 부화되고 또 기계적 조작에 의해 양육된다. 유리관 속에서 배양되는 태아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 각기 지능과 능력이 다른 5등급으로 분류되어 차등 양육된다. 이렇게 태어난 인간들의 머릿속엔 당연히 아버지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근원적 고향이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인공부화국의 유리관이 되어버렸다. 이들에게 가장 큰 욕은 ’어머니를 가진 놈’이란 말이다. 태어날 때 인간의 감정과 개성이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조작, 조절되고 사랑과 신앙은 철저히 금지된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인 심리학자 버나드 마르크스는 이러한 체제에 저항하는 인물로 그는 수정(受精) 당시 인공부화국 직원의 실수로 감수성과 개인적 감정을 지니게 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 존은 소설 속 사회에서 이단(異端)으로 여겨지는,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백인 남자다. 그는 문명세계와 격리된 야만인 보존지역에서 태어나 ’멋진 신세계’로 불리는 어머니의 고향 런던을 늘 동경하며 자란다. 그러던 중 버나드가 존을 그의 어머니와 함께 문명세계로 데려온다. 존은 문명세계에 입성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이루었지만 인간의 감정이 말살된 ’멋진 신세계’에 동화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자처한다.

어느 날 존은 문명세계를 관장하는 세계 감독관 무스타파 몬드와 각각 ‘원시문명’과 ‘과학문명’의 대변자로서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존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인간이 상상력과 예술적 직관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몬드는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는 진리라든지 예술 따위는 필요치 않다고 일축한다. 결국 존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존을 통해 당대의 과학기술 만능 풍조를 공격하는 한편 ’생명공학’(물론 이 소설이 쓰일 당시엔 이런 용어가 없었을 테지만)이 야기할 수 있는 전율스런 미래를 예언하고 경고한다. 특히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전통적인 자연인이 언젠가는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대량 생산될 복제인간에게 지배당해 그들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혹은 안락함과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 출발한 과학기술의 수준은 어느덧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낼 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때문에 1932년 책 출간 당시 단순히 한 편의 기발한 공상과학소설로만 받아들여졌을 이 작품은 7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오히려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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