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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4(목)
어떤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은 퀴리 부인  
<늘푸른나무/세상을 바꾼 사람들/2022년 3월>


어떤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은 퀴리 부인


-추위를 피해 의자 아래에서 자야 할 만큼 가난했던 세계적인 여성 과학자
퀴리 부인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될 소수의 여성 중에 한 명이다. 부부끄럼이 많고 소극적인 폴란드계 여성이 당시 많은 과학자가 불가능하다며 믿지 않은 것을 증명해 냈다. 기존 과학계에 알려진 원소와는 다른, 끊임없이 에너지를 방출하는 새로운 원소, 그녀는 그것을 ‘라듐(Ra)’이라고 불렀다.

라듐은 암과의 전쟁에서 큰 공헌을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암 환자가 라듐에 의해 영구적으로 치유되거나 극심한 고통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들의 수명은 대부분 몇 년씩 연장되기도 했다.

미래의 퀴리부인이 파리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할 때 그녀는 매우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 못해 쓰러질 지경이었다. 먼 훗날 영화사에서 이런 그녀의 삶을 담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100만 달라가 넘는 돈을 투자하리라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다면 얼마나 놀랐을까? 게다가 과학 분야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이 바로 퀴리 부인 자신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욱 놀라지 않았을까? 그녀는 뛰어난 업적으로 1903년 물리학 분야에서 첫 번째 상을 탓고 1911년 화학 분야에서 두 번째 상을 받앗다.

하지만 그녀가 폴란드에 살던 어린 시절,오만하고 부유한 어느 집안에서 모욕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과학자가 되지도,라듐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미래의 퀴리 부인’이 열아홉 살이었을 때, 그녀는 폴란드의 부유한 집안의 가정교사였다. 그녀는 그 집의 열 살 난 딸을 돌보고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인 그 집 아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집에 들렸다. 그는 새 가정교사와 춤을 추고 스케이트도 탓다. 그는 그녀의 우아함과 빛나는 재치, 그리고 詩에 반해 버렸다. 그는 사랑을 느꼈고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했다…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고 거의 기절할 정도였고,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호통쳤다.

“뭐라고? 내 아들이 돈 한푼 없고 사회의 지위도 없는 가정교사와 결혼을 해?”

미래의 쿠리 부인은 심한 모욕을 당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결혼 생각을 접고 파리에서 공부하며 평생의 삶을 과학에 바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1891년, 당시에는 마리아스크도포스카라 불리던 이 젊은 폴란드 여성은 파리의 한 대학에 등록을 했다. 부끄럼도 많이 타고 내성적이었던 그녀는 친구사귀는 것을 무척 어려워 했다. 지나치게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친구를 만들 시간도 없었다. 연구에 바치지 않는 시간은 모두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로 4년 동안은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모은 돈과 폴란드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하는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했다.하루에 그녀가 쓸 수 있는 금액은 고작 60센트에 불과했다. 집세와 식비,의복 구매비, 난방비와 대학 등록급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었다.

그녀의 방에 있는 창문 하나가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방에는 전기도 개스도 없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난방 시설의 부재였다. 그녀는 겨우내 두 부대의 석탄을 살 형편밖에 되지 않았다.

보석처럼 귀한 석탄을 아끼기위해 그녀는 종종 추운 겨울밤에 불을 피우지 않고 수학문제를 풀었다.그럴 때마다 손이 마비되는 것 같았고 어깨가 덜덜 떨렸다.잘 시간이 되면 미래의 퀴리 부인은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옷 가방에서 수건, 베갯잇, 침대보와 여벌의 옷가지를 꺼내 침대에 쌓아 올렸다.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추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끔은 의자를 침대위에 올려 두기도 했는데, 혹시 몸에 약간의 온기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녀의 집에는 요리 재료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그 재료로 요리조차 하지 않았다. 연구에 쏟아야 할 시간을 빼았기는 것처럼 여겼기때문이다. 몇 주씩이나 그녀는 약간의 빵과 버터,붉은 차만 마시며 버텼고 그러다가 종종 어지러워서 침대에 쓰러져 정신을 잃기도 했다. 의식이 돌아온 후에는자신이 기절하 것에 대해 무척 의아해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성 영양실조라는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교실에서 정신을 잃은 어느 날,그녀는 의사에게 자신이 며칠 동안 몇 개의 채리와 당근으로만 생활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파리의 구석방에 있던 이 학생을 너무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10년 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될테니 말이다. 그녀는 연구에 빠졌었고, 지식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추위와 굶주림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었다.

파리에 온지 3년이 지난 후, 마리아 스크워도포스카는 이제껏 만난 남자중에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준 남자와 결혼했다.그 역시 그녀처럼 완전히 과학에 빠져있었다. 그의 이름은 피에를 퀴리. 서른다섯 살의 젊은 나이였음에도 프랑스의 저명한 과학자였다.

결혼할 때 두 사람이 가진 것이라고는 자전거 두 대가 전부여서,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시골마을을 여행하며 신혼을 만끽했다. 점심으로 빵과 치즈, 과일을 먹었고 밤에는 시골여관에서 잠을 청했다.방 안에 은은하게 켜 놓은 촛불이 벽지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낭만을 더헤 주곤 했다.

3년 후에 마담 퀴리는 박사 학위를 준비했다.학위를 받기 위해 독창적인 과학 연구를 주제로 한 논문을 써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당시 발견된 신비스런 현상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우리늄이란 원소가 빛을 내는 이유를 밝히기로 한 것이다. 화학의 신로운 매력을 찾기위한 퀴리 부인의 여정이마침내 시작되었다.

퀴리 부인은 이미 알려진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실험을 거듭했고수백 가지의 광물도 실험해 보았다. 우라늄 외의 다른 물질도 신비한 및을 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모든 실험을 마친 그녀는 그 강력한 빛이 어떤 미지의 원소에 의해 방출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남편 피에르 퀴리도 자신의 실험을 중단하고 그녀를 도와 신비로운 새 원소찾기에 몰두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실험 끝에 부부는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대한 발견을 해냈다.

그들은 우라늄보다 200만 배나 더 강력한 방사능을 지닌 새로운 원소를 발표했다. 또한 그 원소에서 나온 빛은 나무, 돌, 강철, 구리를 통과할 수 있고 두꺼운 납 이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그 빛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수백년동안 과학자들이 믿어 온 모든 근본적인 이론이 뒤집힐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그들은 기적 같은 그 물질에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전에 그와 비슷한 물질이 발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성작인 과학자들은 라듐의 존재를 부인했고 증거를 요구했다. 순수한 라듐을 직접 보여달라고, 그것을 시험하여 원자량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퀴리 부인과 남편은 라듐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4년의 연구 끝에 그들은 라듐 1대세그램(dg)을 만들 수 있었다. 작은 완두콩의 절반 크기에 지나지 않는 양이었다.

과연 어떻게 순수한 라듐을 만들었을까? 그들은 의과대학 학생들이 이전에 실험실로 쓰던 낡은 헛간에서 8톤의 광석을 끓인 후에 정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 연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은 건물이었다. 마루도 없고 지붕에서는 물이 샜다. 오래된 난로는 불을 피워도 밖에 있는 것처럼 추웠다. 끓어오르는 광석과 화학물질에서 생긴 독한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갑고 목도 아팠다.

4년 동안 그녀와 남편은 그토록 끔찍한 헛간에서 연구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자신감을 잃었고 더 좋은 시기가 올 때까지 연구를 중단하길 원했지만, 퀴리 부인은 그렇지 않았다.퀴리 부인은 1데시그램의 라듐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순간까지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순간, 퀴리 부인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다.

과연 퀴리 부인은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꼈을까?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훗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더럽고 낡고 초라한 헛간에서 연구하던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가난하고 춥고 피곤했지만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녀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1902년 퀴리 부인과 남편은 백만장자가 될지 아니면 순수한 과학적 이상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라듐이 암 치료에 굉장히 유용한 물질임이 세상에 알려졌고 따라서 라듐에 대한 수요는 점점 급증했지만 퀴리 부부를 제외하고는 세상 누구도 라듐을 제조할 수 없었다. 그들은 라듐 추출 기술에 대해 특허를 받을 수도 있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라듐 단 한 조각에 대해서도 로열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물론 라듐이 영리를 목적으로 생산될 경우, 상업적인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를 받는다고해서 그들이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로열티를 받음으로써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소한 일거리가 사라져 좋은 연구소를 설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퀴리 부인은 자신의 업적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 그렇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더구나 라듐은 인류의 질병 치료에 사용될 물질이므로 그것을 절대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데 써서는 안됩니다.”

마치 그리스도처럼, 그녀는 부와 가난 사이에서,쉬운 삶과헌신의 삶 사이에서 위대한 결정을 내렸다.

*데일 카네기의 <5분 명상록>더 클래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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