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5(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영원한 모상과 월광을 그린 화가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 40/2018년 5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1834-1903)

-영원한 모상(母像)과 월광(月光)을 그린 화가


매년 5, 어머니 날이 다가오면 미국사람들에게는 떠오르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있다. 의자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검은색 드레스의 60 여인, 회색의 장갑과 머리를 감싼 스카프가 특히 인상적이면서 요즈음 흔히 있는 전형적인 미국여인들과는 너무나 다르지만 미국사람들에게는 전형적인 영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부각되어 있는 그림이다


약속된 모델이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대신 모델이 되어주도록 부탁하여 그렸다고 하는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1,>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림은 사실은 화가 자신이 시도하던 색깔의 배합에 의한 심미적인 표현의 시도로 처음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그의 시도가 실패한 작품이니, 성공한 작품이니 하여 평론가들과 화가간에 논란이 많았지만 화가의 적극적인 자기 주장과 그의 새로운 시도를 따르려는 화가들이 증가하면서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를 밭게되었고 지금은휘슬러의 어머니 이름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을 그린 화가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1834-1903) 미국의 화가다. 그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미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미국예술계는 휘슬러를 첫째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중 하나로 평가하며 포스트 인상파 운동의 선구자요 심미적인 미술의 선두주자로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특히 혁신적인 회화스타일과 괴상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는 항상 자신감이 넘쳐 자신의 주장에 대담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을 모욕한 미술평론가나 상인 화가들에게는 구두 보복은 물론 법적 보복까지도 마다하지 않아 법정비용을 대느라고 파산선고를 받는 일까지 있었다


휘슬러는 엔지니어인 죠지 와싱톤 휘슬러의 아들로 미국의 마사츄세츠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설계사로 일하기 위해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그가 한살 가족들은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러시아제국 미술학원> 등록, 공식적으로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나 휘슬러가 15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휘슬러의 정식미술교육은 4년으로 끝나고 말았다.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돌아온 그에게 어머니는 휘슬러를 성직자로 키우려 하였지만 그는 군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웨스트포인트의 사관학교에 진학하여 군인이되려 하였으나 적성에도 맞지 않고 성적과 품행때문에 퇴교를 당하자 휘슬러는 제도사로서 잠시 일한 후에 유럽으로 가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로 휘슬러는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에서 그림을 복사하는 알바이트를 하면서 현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 베트 (Gustave Courbet), 알퐁스 레그로스 (Alphonse Legros),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시인이자 미술 비평가 찰스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등과 사귀면서 나름대로 특징있는 미술성을 지향했다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사실주의나 인상파를 지양하고 포스트 인상파 운동의 선구라고 있는 심미주의적 예술,예술을 위한 예술 지향하여 추상화로의 초기변화를 시도하였다.


휘슬러는 그림의 제목으로 "교향곡", "편곡", "녹턴" 같은 추상적인 음악 용어를 사용하여 음표와 색조의 상관 관계를 제시하고 그림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법을 주도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전통적인 모델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아름다움의 개념을 개발하는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프랑스에 있으면서 당시 예술계에 영향을 미쳤던 일본예술의 영향을 많이 밭았다. 그리고 섬세한 동양 패브릭 패턴과 소도구들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 적용한 미국화가의 하나다.

이러한 휘슬러의 괴팍한 행보 덕분에 젊은 시절 살롱에 작품을 출품했으나 항상 낙선되었고, 1863년에 〈흰옷 입은 소녀〉를 출품, 또다시 낙선하자 그는 유명한 낙선 화가 전람회에 작품을 내놓기도 하였다


<휘슬러의 어머니> 알려진 그의 작품은 경제공황이 심각하던 1930년대에백만 달러짜리 그림으로 호가 되었으며 시카고세계박람회를 통해서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화로 명성을 날리면서 그의 심미적인 그림의 대표작일뿐 아니라 보편적인 모상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연방정부 우정국은 1934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휘슬러의 어머니 아메리카의 어머니상으로 격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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