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5(화)
모하마드 알리-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챔피언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8년>


모하마드 알리(본명은 Cassius Marcellus Clay Jr.후에 Muhammad Ali로 개명 1942 -2016)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챔피언- 

1942년 켄터키 주의 루이빌에서 출생한 캐시어스 클레이는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서일뿐 아니라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에 흑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마음껏 들어내면서 민권운동가로서 나름대로 큰 공헌을 한 운동선수였다. 그는 열 다섯살이었던 1957,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권투선수 조련사요 코치였던 안젤로 던디(Angelo Dundee)에게 전화를 걸어나는 캐시어스 클레이인데 헤비 웨이트(중량급) 세계챔피언이 될 거에요라고 큰 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그는 큰소리친대로 1964년 올림픽에서 중량급 금메달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1974년과 1978년도 세계 선수권을 획득하여 세계선수권 3연패의 기록을 남겨 알젤로 던디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캐시어스 클레이는 1942년 켄터키 주의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열 두살에 아마츄어 권투선수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으며 열 여덟살 되던 1960년에 로마올림픽에서 경량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후 그는 중량급으로 올려서 22살인 1964년에 소니 리스톤과의 대결하여 KO로 그를 물치고 헤비웨이트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클레이의 지상 목표는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었지만 여느 운동선수들과는 달랐다. 평소 백인들의 위선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던 그는 당시 미국에서는 괄시를 받고 소수자의 종교인 이슬람교로 개종하였으며 자신의 이름도노예의 이름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명예로운 이름인모아메트 알리로 바꾸었다. 그리고 백인들이 지배하고 있던 미국의 기성사회를 상대로 그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당시 미국사회에서 번지기 시작했던 민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세계챔피언싶을 획득하지 2년 후인 1966. 알리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앙양심과, 당시 젊은 세대간에 널리 퍼져나갔던 월난번 참전 반대를 이유로 당시 미연방의 모병제도였던 징병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였다. 그것은 한번 해보는 게임이 아니라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반 사회적인 행동이였으나 그는 단행한 것이다. 그 결과 체포되어 징병기피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세계챔피언 타이틀도 몰수당했을 뿐 아니라 게임을 할 권한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꿈꾸며 노력한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는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상소심 끝에 1971년 승소판결을 받아 냈지만 운동선수로서는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기간 거의 4년 동안을 게임 한 번 못해보고 20대를 넘기고 말았다.

 

그는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상실하고 말았지만 월난전 참전에 항거했던 그의 양심수로서의 명성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당시 세를 확장해가던 젊은 반문화세대의 우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알리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인 명성에 안주하지 않았다. 선수로서의 오랜 공백기간에 실망하지 않았다. 알리는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한 후 4년 여의 공백끝에 1971년 죠 프레이지어와세기의 대결을 벌였으나 프로로서의 첫번째 패배인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는 피나는 노력끝에 3년 후인 1974년에 프레이져와 재대결을 벌려 그를 누르고 10년만에 챔피언싶을 다시 거머쥐었다 그후 1978년 봄 레온 스핑크스와의 대결에서 패하여 챔피온싶을 내주었으나 그해 가을에 열린 리턴매치에서 승리하면서 세번째 챔피언싶을 차지하므로 선수권 3회 쟁취라고 하는 세계 권투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1981년 트레버 벌빅과의 시합에서 패배한 알리는 권투계에서의 은퇴를 선언하였다.

 

알리는 1981 39세로 은퇴하기까지 종합 61경기에서 56, 5패를 기록하였으며 그 가운데 37게임을 KO로 이겼다. 알리는 은퇴한 후 흑인들을 위한 민권운동과 모금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선수생활때 입은 뇌손상으로 인해 1984년 파킨슨스 병 진단을 받고 30여년 이상을 투병생활을 하다가 아리조나주의 피닉스에서 2016년 여러가지 합병증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기록이 보여주듯이 알리는 그야말로 가장 위대한 권투선수였다. 그러나 단지 주먹만 잘 휘둘렀던 권투선수가 아니라 인종차별적인 사회를 향해 분노할 줄 알고 항거할 줄 아는 의식을 가진 권투선수였기에 팬들의 특별한 사랑과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역사적인 권투경기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게임을 흥행으로 유도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떠벌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그의나비같이 날아가, 벌과 같이 쏜다는 떠벌림은 권투를가장 위대한 선수세기의 게임으로 승격시켰으며 한때 권투의 위상을 한껏 올려주었다. 파킨스 병으로 투병하면서도 미국 애트란타에서 열렸던 1996년도 올림픽개회식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성화를 점화하던 알리의 모습은 2012년 런던올림식 개막식때 부인의 도움을 받으며 올림픽 기를 운반하던 모습과 함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착잡한 감정과 함께 그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그는 와병중에도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으며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를 위대함의 규감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알리를진정한 성공은 실패 후에 오는 것임을 믿었던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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