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목)
소조너 투르스(1797-1883)-노예에서 반노예제도 및 여권신장 운동가로-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7년 12월>

소조너 투르스(Sojourner Truth 아명은 이자벨라 바움프리Isabella (Belle) Baumfree;c.1797-1883)
-노예에서 반노예제도 및 여권신장 운동가로-

미국은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합중국인만큼 그들의 생활배경에 따라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펼치면서 미국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며 미국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소조너 트루스이다. 뉴욕주에서 한 흑인 노예부부의 10명이 넘은 자녀가운데 하나로 태어나서 9살 때부터 노예로 팔려다니기를 여러 차례. 백인 주인들에게 시달리고, 학대받으며, 그녀가 좋아했거나 그녀를 좋아하던 남자들은 그때문에 팔려가거나 린치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끝내 늙은 노예 도마스와 다섯 자녀를 낳아 자신의 가정을 꾸렸던 이자벨라는 1826년 반노예제도의 정서를 타고 노예제도를 불법화하려는 뉴욕주의 상황을 파악하고 딸과 함께 자유를 찾아 탈출하였으며 1828년에는 입법과정에 적극 개입하여 미국 역사상 최초로 백인주인을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다섯살 때 팔려간 아들을 되찾는 등 반노예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한편으로 그녀는 신앙생활에 몰두한듯, 그녀는 한때는 백인 주인들의 가혹한 학대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백인들을 미워하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주인이신 예수를 만난후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다고 증언하였으며 노예해방이 공포되었을 때는 자신의 기도가 성취되었다며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간증하기도 하였다.

1843년 하나님께서 뉴욕을 떠나 지방을 돌면서 자기 안에 넘쳐나는 희망을 전파하라고 부르셨다고 이야기히면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이름을 소조너(여행자) 트루스라고 개명하고 순회설교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850년 그녀는 <한 북부 노예였던 소조너 트루스 이야기>(The Narrative of Sojourner Truth:A Northern Slave)를 펴냈으며 5피트 11인치의 거구를 가진 트루스는 남성목소리와 같은 허스크 보이스에 특별한 호소력이 있었든듯 그 다음해인 1851년에 오하이오 주의 아크론에서 모인 오하이오 여성인권대회에서 행한 즉석연설 "Ain't I a Womman?"은 그녀가 행한 최고의 연설로 출판되어 전국적으로 널리 퍼졌다. 이러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 그의 활동무대는 전국적으로 뻗어나갔다. 그녀는 특히 남북전쟁중 유명인사로 널리 알려져 전쟁중에는 흑인들이 미 연방군에 지원하도록 적극 독려하였다.

전쟁이 끝난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연방정부를 상대로 해방된 노예들의 토지상환 등 흑인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일에 열심인 한편 여성들의 권리 신장과 투표권을 위해서, 신앙의 자유와 절제운동, 평화운동 등 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녀에게서 중요했던것은 젊었을 때의 비참했던 과거에 침몰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당면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지적하고 비판하고 저항하면서 미국사회를 개조하는 다양한 봉사 활동에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형무소 개선운동에도 참가하였다.

한 전기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한 동안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전파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계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트루스는 특별한 연설의 능력을 가지고 30여년을 한결같이 여러가지 방면에서 미국의 개혁운동에 힘을 더해주었다고 평가하였다.

2014년 와싱톤 D.C.에 있는 스미소나안 박물관의 기관지인 <Smithonian>은 흑인노예출신의 소조너 트루스를 <미국을 위해 크게 공헌한 100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였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웹진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지리로 배우는 미국>,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 등을 연재하였다.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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