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4(화)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1935-1977, )-미국 로큰롤의 왕-  
<늘푸른나무/김상신의 <인물로 배우는 미국 32>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1935-1977, Elvis Aaron Presley)

-미국 로큰롤의 왕-

오는 8월 16일은 미국 ‘로큰롤의 왕’이라고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40주기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문화 아이콘의 하나로 여겨지던 프레슬리는 로큰롤 음악의 왕이라 불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제왕(the King)’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나 4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1935년 미시시피주의 한 시골도시에서 태어난 프레슬리는 13살에 부모를 따라 테네시 주의 멤피스로 이주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중학교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하였으나 세속적인 노래라하여 학교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듯 하며 음악과목에서 낙제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의 훤출한 미모와 함께 그의 노래가 꽤 인기가 있었던듯 하다. 플레슬리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앞으로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작정하였으나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것은 전혀 없고 컨츄리뮤직홀이나, 교회의 가스펠 뮤직, 흑인 동네의 리듬 앤 브루스 등 부지런히 쫓아 다니며 감상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1954년부터 Sun Records사의 제작자 Sam Phillips의 눈에 띄어 함께 음반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엘비스는 당시 유행하던 팜 뮤직과 칸츄리 무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가 출석하던 교회를 통해 듣던 복음성가와 흑인영가 등의 영향, 또한 많이 받았다. 그외에도 틴 에이저 때에는 멤피스의Beale거리를 중심으로 번져가던 흑인들의 리듬 앤 브루스에 빠져 찾아다니며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1956년 그는 자신이 받은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사회적, 인종적인 장벽들을 결합하여 그 나름의 특이한 소리와 스타일로 새로운 미국음악과 팜 문화의 장을 열어 놓았다. 그의 이러한 음악적인 특성에 훤출한 외모 등이 어울려 프레슬리는 국제적인 돌풍을 몰아 왔다.

그는 1956년에 출시한 “HeartBreak Hotel”로 미국 제1의 힛트를 기록하였으며 록앤롤의 선두 주자로 지위를 굳혔다. 그의 활력 넘치는 곡 해석과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흑인들의 몸짓은 들불과도 같이 번지기 시작한 민권운동의 대두와 겹쳐지면서 많은 논란과 함께 프레슬리에게 인기를 더해 주었다.

같은 해 프레슬리는 <Love Me Tender>라는 영화에도 데뷰, 주제곡 ‘러브미 텐더’와 함께 크게 힛트했지만 1958년에 군에 징집되어 2년동안 독일에 주둔하게 되었다. 공백기 탓인지 제대하여 헐리웃 영화에 출연하면서 앨범들을 출판했으나 별 재미를 못 보다가 1968년 7년만에 ‘Elvis’라는 특별 공연으로 무대에 캄백하면서 라스 베가스 공연과 함께 세계연주여행을 하는 등 197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지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다니며 ‘황제’로 등극하였다.

프레슬리는 아직까지도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음악가이며 브루스와 복음성가 등 여러 장르에서 인기 있는 음반들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였고 레코드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낸 가수로 세계적으로 1억장 이상의 음반을 팔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는 33편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당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TV에는 수도 없이 출연하였으며 순회연주중에는 기록을 깨는 관중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그는 그래미상에 14번이나 후보자로 지명, 세번을 수상하였고 1970년에는 미국 의 Jaycees에 의해 미국의 훌륭한 젊은이 10인의 하나로 선출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여러 음악의 전당에 올라 있다.

그의 재능과 미모, 감성과 카리스마 그리고 유모어 감각 등으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샀으며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겸손과 친절로 사람들을 대했다. 백인들의 컨츄리 음악에 흑인들의 리듬 앤 브루스를 녹아낸 그의 음악은 미국 팝 문화의 면모를 바꾸어 버렸다. 그는 생동감 넘치며 반역적인 음악의 상징인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친절한 가수로 20세기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고, 위대한 록커로,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자였고, 좋은 사람이였고 위대한 미국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려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느끼고 의미를 추구하였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멤피스에 있는 그의 저택 Graceland에서 1977년 8월 1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던 저택.Graceland로 불리는 이 저택에는 생시의 그의 소장품들이 진열되어 관광객들에게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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