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3(목)
프레드릭 더그라스( c.1818-1895)-미국의 노예제도 폐지운동의 기수-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7년 7월>

프레드릭 더그라스(Frederick Douglass c.1818-1895)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운동의 기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20세기 흑인들의 민권운동을 이끌면서 흑인들의 인권을 향상스킨 대표자라면 프레드릭 더그라스는 그에 버금가는 19세기 흑인노예제도폐지와 인종차별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흑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매릴랜드 주의 한 흑인 하녀와 백인 주인사이에서 태어난 더그라스는 노예의 신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백인주인의 아내가 그에게 알파벳을 가르친 덕분에 스스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자습으로 공부하였다. 16세 때에는 다른 노예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정도가 되었으나 그것때문에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더그라스는 20세에 가혹한 학대를 피하고자 탈출을 시도하여 뉴욕으로, 마샤츄세츠 등지로 이동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 정착하는데 성공하였다.

자습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더그라스는 당시 흑인 신문의 편집인으로 16년간 활동하면서 기사와 사설 등으로 명 논설자요 작가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노예제도 폐지론자로서 인권평등주의자로서 그의 명 연설은 국제적으로까지 명성을 날리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예제도 반대론자로, 세계적인 명 연설가요 작가로 부상하였다.

그는 평생동안 다양한 개혁운동에 관여하였는데 여성권리진작, 절제운동, 평화운동, 토지개혁운동, 사형폐지운동, 자유로운 공립교육 문제 등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에 끊임없이 관여하였다. 그가 계속해서 강조했던 것은 “호소하라, 호소하라, 호소하라,” “요구하라, 요구하라, 요구하라” 였다. 그런 가운데도 그가 많은 노력과 시간과 재능을 바쳤던 것은 노예제도 폐지와 흑인들의 동등한 권리에 있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으로는 3부작인 그의 자서전을 들 수 있다. 1840년대 초기 반 노예제도 운동을 이끌던 활동가로서의 개혁운동에서부터 1890년대의 반(反) Jim Crow(흑인들의 식당, 화장실, 뻐스 사용들 금하던 흑인차별운동) 운동과 백인들의 린치사건에 대한 저항운동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노예들의 애환을 엮은 이 자서전은 미국인들의 자서전의 고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첫권은 1845년 <한 미국의 노예, 프레드릭 더그라스의 삶의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계속해서 <나의 멍에와 자유(My Bondage and My Freedom)>이 1855년에 그리고 1881년에 <프레드릭 더그라스의 삶과 시간(The Life and Times of Frederick Douglass)>이 출판되었는데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첫번째 반 자전적인 기록이라는 면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미국 자서전의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크래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영감을 주는 문필가일뿐 아니라 설득력을 갖춘 명 연설가로 연설과 사설 등을 통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자기 동포들에게는 불굴의 희망을 고취하였으며 반노예제도 정책을 수용하고 자신이 구체화한 아메리카의 이상을 설교하였다.

더그라스는 남북전쟁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도덕적인 십자군운동으로 환영하였다. 전쟁 기간중 그는 유니온의 목적과 해방운동을 선전하는데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흑인 징병자들을 모집하는데 앞장 섰고 링컨 대통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자문역할도 하였다. 그는 유니온의 승리를 새로운 헌법과 인종적 평등의 이념에 근거한 새로운 미국의 탄생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인종 문제, 당시의 정치, 여성의 권리 등에 관하여 계속해서 강연하였으며 1870년에는 와싱톤 D.C.로 옮겨 신문 편집인으로 은행가로 그리고 산토도밍고의 대리공사, 하이티의 장관 등 정부 요직에 임명되어 정치가로의 생활을 하였다.

훌륭하고, 영웅적이며 다양했던 다그러스의 삶은 그의 시대의 상징이며 휴매니즘과 사회정의로 점철된 특이한 것이었다. 그의 삶과 사상은 항상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 하였고 억압에 저항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이었다.

더그라스는 흑인노예제도 폐지론자로서 자신이 목격하고 참여하였던 위대한 사건들이 지니는 의미와 기억들을 보존하기 위한 수년간의 노력 끝에 1898년 세상을 떠났다.

1965년 미연방 우정국은 ‘미국의 위인들’이라는 시리즈 우표로 더그러스를 기념하는 기념우표를 발행하였다. 한편 에일대학교는 1999년 프레드릭 더그라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노예제도와 노예제도 철페운동 또는 더그레스에 관한 저서가운데 매년 우수서적을 선정 수상하는 Frederick Douglass Book Prize를 제정 매년 $25,000을 상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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