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3(목)
베이비 루스 쥬니어(1895-1848)-미국사람들의 우상, 야구왕 -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7년 6월>

베이비 루스 쥬니어(Babe Ruth Jr. 1895-1848)
-미국사람들의 우상, 야구왕 -

미국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인물들은 단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다. 특히 매스컴이나 TV의 발달로 리빙룸에 앉아서도 유명선수들의 중요게임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최근에 와서는 운동선수들이 국민들의 인기를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며 그들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운동선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미국인들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선수를 꼽으라면 아마도 베이비 루스 쥬니어를 뽑을 것이다. 운동선수란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인기를 간단히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운동을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선수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대중들에세 가장 인기가 좋은 경기의 선수일 때 그들의 인기 역시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외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유지하면서 좋은 기록을 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기술 또한 매스컴의 시대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5년 와싱톤 DC에 있는 스미소니안 박물관은 기관지 <SMITHSONIAN>잡지를 통해 <The 100 Most Significant Americans of All Time>이란 특집판을 발행하였는데 이 잡지가 선정한 미국 프로체육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운동선수1위는 프로야구 선수인 베이비 루스 쥬니어였다.
1914년에서 1935년까지 22년 동안 미국의 메이저리그야구(MLB)에서 활약하면서 보스톤 레드 싹스에서는 좌완 투수로, 뉴욕 양키즈에서는 외야수 홈런 타자로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인기가 마구 상승하였던 선수다.

기라성 같은 각 분야의 운동 선수들 가운데서도 루스는 미국문화에서 가장 위대한 스포츠 영웅으로, 그리고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로 대우받고 있다.

1936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처음 설립됐을 때 처음으로 전당에 오른 선수 5명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베이비 루스는 1895년에 출생하여 7살에 성? 매리 남자학교에 입학하여 크리스천 형제단의 바티아 버틀리어 수사에 의해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1914년 볼티모어 오리얼스의 마이너 리그에 입단하였으나 1916년에는 보스톤 레드 삭스에 스카웃 될 정도로 투수와 장타자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는 보스톤 팀에 있으면서 한 시즌에 투수로 23승을 두 번이나 기록했고, 세 번이나 월드챔피온 시리즈에 진출했으며 1919년에는 당시의 홈런 기록을 깨기도 하였지만 그는 보다 많은 게임에 출전하기 위해 순번제의 투수보다는, 매일 게임에 출전할 수 있는 외야수로 활약하기를 원했다. 팀의 필요와 개인적인 야망 사이의 갈등이 원인이 되었든듯 그는 보스톤 레드 삭스에서 뉴욕 양키즈로 이적하였는데 이적을 둘러 싸고 많은 논란들이 있었다.

그 후 보스톤 레드 삭스는 86년동안 한번도 챔피온십을 차지하지 못한 반면 창단 이래 챔피온십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던 뉴욕 양키즈는 루스가 같이한 15년 동안 아메리칸 리그 챔피온십을 7번, 월드 시리즈 챔피언싶을 4번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뉴욕 양키즈로 이적하여 외야수로 정착한 루스는 개인적으로도 1927년에는 한 시즌에 60개의 홈런을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은 그 후 34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았다. 1935년 그가 은퇴하기까지 아메리칸 리그에서 12번이나 홈런 기록을 갱신한 그는 홈런 714개에 타점(RBI) 2213개, 4볼 진입이 2,062개, 타율 .6897, 출루율 1,164를 기록하였다.


?1936년에 은퇴한 루스는 프로팀의 매니저 역을 원했든듯 하지만 그의 놀라운 활약과 분망한 활동과 화려한 생활에 구단주들이 별로 내키지 않았던듯 스카웃 제의가 없자 루스는 야구에 관계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고 전장의 군인들을 위문하는 일을 하다가 194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양키즈의 스타디움에 2일간 안치되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성 패트릭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렀는데 10만 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참배하였다고 한다.

1949년 뉴욕 양키스는 구장안 센터필드에 루스를 기념하는 대리석 기념비를 세우고 Monument Park Yankee Stadium이라고 명명하였다. 구장안에 세워진 기념비는 루스가 유일하엿으나 새로운 양키스타다움을 세우고 5명의 기념비를 세우면서 5명중의 1인이 되었으며 루스가 입던 유니폼의 넘버 3이 양키팀에서는 영구 은퇴하였다. 그에 관한 전기가 25권이나 출판되었다는 것으로도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루스가 출생한 볼티모어의 오리올스 구장 근처 216 Emor Street에는 루이스가 출생한 집이 있는데 이 건물을 수리하여 1973년부터 베비 루스 뮤지움으로 사용하고 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70여년이 되가지만 베이비 루스는 아직도 미 메이저 리그의 가장 위대한 선수로 미국 역사의 진정한 아이콘의 하나로 미국민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웹진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고 있으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지리로 배우는 미국>,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 등을 연재하였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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