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로 배우는 미국   ▒  

2017/8/3(목)
안나 허친슨(1591-1643)-식민지 초기 용감한 여성 영적 지도자였던-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7년 5월>

안나 허친슨(Anne Hutchinson,‘1591-1643)
-식민지 초기 용감한 여성 영적 지도자였던-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폴라 화이트라고 하는 젊은 여자 목사가 기도 순서를 인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The New Destiny Christian Center의 목사로 도날드 트럼프의 영적 고문이요 사업 파트너로 알려진 이 여성의 출현은 적지 않은 여성 종교 지도자들이 미국 역사 가운데 두각을 나타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안네 허친슨을 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북미 대륙으로 몰려들던 17세기, 신실한 청교도로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마샤추세츠로 이주하여 자신의 신학과 성경해석을 널리 전파하고 그것 때문에 매사츄세츠의 식민지에서 소위 말하는 도덕폐기논쟁(the Antinomian Controversy)을 일으키고 주지사로부터 추방명령을 받는 등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1591년 영국 링컨샤이어의 알포드에서 태어난 안네는 부모님의 배려로 학문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성장하면서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비교적 많은 교육을 받았는데 어머니로 부터는 간호학과 약초를 다루는 법을, 교회의 장로인 아버지로부터는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영국국교회의 종교적인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612년에 사업가 윌리암 허친슨과 결혼한 안나는 남편과 11명의 자녀와 함께 당시 영국국교회 성직자로 퓨리탄이라 하여 핍박을 받다가 매사츄세츠 식민지로 이주한 John Cotton의 뒤를 따라 1634년 매사츄세츠 식민지로 이주하였습니다.

조산원으로 약초 재배상으로 일하면서 보스톤에 정착한 안나는 동네와 교회에서 환영받는 존재였읍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안네는 자기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스톤 동네의 여성들을 위한 성경공부 모임을 주관하게 되었는데 매 월요일 사람들이 모여서 주일날 자신들이 들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이야기 하고 그것들에 관해 토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안네는 자신의 신앙도 함께 이야기 하였고 때로는 그것이 기성 교회의 퓨리탄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나 신학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믿음을 통해 직접 주어지는 것이라는 성령중심의 신학을 주장하는 안나는 인간들의 행위를 중시하고 성경의 계율을 철저히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퓨리탄 목사들의 정통적인 견해와 상충하였습니다.

모임에는 60-80여명까지도 모였다고 하는데 물론 이곳으로 온 퓨리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온 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식민지 건립에 앞장 섰던 John Winthrop 주지사같은 지도자들에게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서의 통일과 질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은 교회 장로들의 지시를 잘 따르고 특히 여자들은 복종과 협조의 역할을 잘 감당할것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명령에 불복한 안나에게 윈드롶 주지사는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안네 허친슨은 1638년 보스톤 교회로부터 출교당하고 정부로부터는 추방당하여 로드 아일랜드로 가서 그곳에서 신앙의 던 Roger Williams 와 합류하였습니다. 1642년 William Hutchinson 이 죽자 안네는 계속되는 마샤츄세츠의 박해를 피해 네델란드 계통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롱 아일랜드로 옮겼다가 원주민 인디안들의 습격을 받아 1643년 대부분의 자녀들과 함께 살해당하였습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중 사망하는 비율이 무척 높던 당시에 안네는 열 다섯명의 자녀들을 출산하였으며 그녀를 따르던 Mary Dyer는 퀘이커교로 개종했다고 하여 1660년에 퓨리탄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22년에는 시민의 자유와 종교의 관용을 고양하는데 끼친 그녀의 공로를 치하하는기념비가 보스톤에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그녀를 종교자유의 기수요 여권신장 운동가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성의 활동이 극히 제한되었던 환경가운데서 자신의 생각을 용감하게 이야기하고 양심에 따라 살았던 전형적인 아메리칸 여성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 또 하나의 모범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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