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8/3(목)
메리웨더 루이스(1774-1809)-Lewis and Clark Expedition 탐험대장-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7년 4월>

메리웨더 루이스( Meriwether Lewis 1774-1809)
-Lewis and Clark Expedition 탐험대장-

미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든게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도 탐험가들의 공로는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을 믿고 무조건 서쪽으로 항해하여 미지의 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컬럼버스나 추위를 마다 않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허드슨 강변을 탐험하다가 선원들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은 허드슨 부자, 오하이오를? 거쳐 미시시피 일대를 탐험하였던 라살과 말켓 신부 등 그들의 모험정신과 탐험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탐험가들 가운데 그동안 별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탐험가로 각광을 받는 탐험가가 있다. 험준한 광야길을 수 천 마일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서부확장의 첫걸음을 내디디게 하였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탐험가들로 제퍼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구성된 탐험대의 대장이었던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대위와 그가 부대장으로 임명한 윌리암 클락(William Clark)중위를 꼽고 있다. 

1803년 프랑스와의 외교를 통해 북미대륙의 루이지아나 일대(지금의 루이지아나 주가 아니라 거래 당시의 북미대륙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를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 부터 구입한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새로이 편입된 광대한 지역을 탐험하여 지도를 작성하도록 군 장교출신의 루이스를 대장으로하는 33명의 탐험단을 구성하여 파견하였다.

루이스는 독립전쟁에서 전사한 대륙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20세에 군에 입대하여 전방에서 복무하였고 결국에는 제퍼슨의 부관으로 임명되었다. 젊은 장교의 용기와 원주민 인디언들에 관한 진지한 관심에 반한 제퍼슨은 루이스를 루이지아나 원정대를 이끌도록 대장으로 지명하였고 루이스는 클락을 동료 지휘관으로 지명한 것이다.

제퍼슨 대통령은 미지의 북서부 아메리카 대륙에 탐험대를 보내면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 장악하게된 지역의 지세와 자연상황을 탐사하여 동, 식물과 자연자원의 생태와 분포를 조사하고 지도를 만드는 것을 1차 목표로 하지만 중서부의 미시시피 강에서부터 서부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연결된 강을 발견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대륙을 관통하는 상업적 용도의 수로(水路)를 확보하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결과적으로는 서부 해안의 남과 북을 관통하는 럭키산맥 때문에 그런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했을뿐 육로(陸路)를 통해 태평양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제퍼슨이 의도했던것은 아메리카 대륙 내지(內地)에 존재하는 수많은 원주민 인디언 부족 또는 국가들을 접촉하여 교역을 하는 한편 동부에 있는 미합중국의 존재를 알리고 통치권을 선포하는 한편 그들과의 교류를 시도하도록 하는 외교임무까지도 부여하였다.

루이스는 단지 용감한 군인이 아니었다. 제퍼슨이 보기에 위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과 지식을 가졌다고 판단되었을뿐 아니라 자신의 서재를 개방하여 필요한 서적들을 참고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적극 지원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린 1904년 루이지아나매입박람회와 1905년 포트랜드 오레곤에서 열린 루이스, 클락 100주년박람회를 계기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20세기 후반부터 철저한 연구가 시작되어 그들의 일지와 탐험기록들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면서 그들이 어느 탐험가들 보다도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1804년 5월 14일 이 탐험대는 세인트 루이스 근처의 캠프 두보이스를 출발하여 대장정의 길에 나섰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하다가 몬타나에 있는 상류에 도달한 그들은 거기서부터 록키 산을 넘어서 현재의 아이다호, 와싱톤, 오레곤 주로 항해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태평양에 다달았다. 클락은 1805년 11월 7일 그날의 감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캠프는 큰 기쁨에 휩싸였다. 우리가 그렇게도 보기를 갈망했던 광대한 태평양을 보았다. 그리고 암벽을 두드리는 파도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바다를 보다니! 오! 얼마나 기쁜지!”

원정여행중 이들은 20여개의 인디안 국가들과 만나서 관계를 맺었는데 그들의 도움이 없었드라면 겨울철을 맞아 겨울을 지내기 어렸을 것이며 록키 산맥에 부딕쳤을 때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Lakota(Sioux 또는 Tetonwas Sioux라고도 부름) 국가만 제외하고 다른 인디안 국가들은 우호적이어서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었다. 호전적이고 강력한 라코타 인디언들과는 몇 차례나 충돌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선물 등으로 회유하여 그 지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1806년 3월 22일 귀로에 오른 이 탐험대는 눈이 녹기를 기다려 록키 산을 넘어 9월 23일 세이트루이스에 도착하여 2년 4개월 10일의 긴 장정을 마감하였다.
 
루이스는 이들 인디언 부족들의 이름, 그들의 지역, 교역하는 방법 그리고 접근하는 수로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제퍼슨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보냈고 그 후에도 계속하여 탐험기록을 정리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제퍼슨 대통령은 루이스를 루이지아나의 주지사로 임명하였으며 클락은 인디언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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