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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8(일)
마르다 와싱튼 (1731-1802)-미국의 첫번째 퍼스트 레이디-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6년 12월>

마르다 와싱튼 (Martha Washington, 1731-1802)
-미국의 첫번째 퍼스트 레이디-

퍼스트 레이디 하면 영부인이라 하여 일반적으로 대통령 또는 국가 최고 통치자의 부인을 일컽는다. 한동안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남편이 나타나면 어떻게 불러야 하느냐?하는 호사스런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당분간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이 기회에 미국의 첫번째 퍼스트 레이디 마르다 와싱톤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들 가운데는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까이는 틀림없이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는 줄 알았던 힐러리 클린튼을 위시해서 대통령 후보 추천을 사양했던 에레놀 루즈벨트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퍼스트 레이디들은 가사와 내조로 대부분의 백악관 생활을 보냈다. 퍼스트 레이디는 대통령의 부인일뿐 그들에게 특별히 부과된 의무나 책임이 없으므로 백악관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성격과 취향에 많이 좌우될 뿐 특정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퍼스트 레이디라는 지위는 항상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요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런점에서 첫번째 퍼스트 레이디의 생활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죠오지 와싱톤 대통령이 두 차례 임기중 항상 먼저 생각했던 것은 자신이 하는 결정과 행동이 미국 대통령들의 선례가 된다는 것으로 항상 좋은 선례를 남기려고 노력하였다. 마르다 역시 남편의 뜻을 받들어 퍼스트 레이디들을 위한 좋은 선례를 남기려고 노력한 퍼스트 레이디이다.

1731년 버지니아의 대 농장주의 맏딸로 태어난 마르다는 당시의 일반 여성들과는 달리 읽고 쓰기를 배워 종교서적들을 위시해서 많은 소설들과 잡지를 읽으며 성장하였다. 19살 때 교회에서 만난 이웃 마을의 농장주인 20년 연상 다니엘 파키 커티스(Daniel Parke Curtis)와 결혼한 마르다의 결혼생활은 커티스의 죽음으로 7년 밖에 계속되지 못했다. 그동안 커티스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둘은 5세 이전에 세상을 떠났고 후에 얻은 둘 가운데 딸은 17세에, 유일한 후손이었던 아들은 27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르다가 남편 커티스와 사별하였을 때 그녀는 17500 에이커의 농지에 300여명의 노예를 상속받은 26세의 젊은 과부였다. 남편의 죽음으로 마르다는 어쩌면 나이 많은 농장주의 아내로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구속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남편을 잃으지 18개월 만에 그리고 죠오지 와싱톤을 처음 만난지 10개월 만에 재혼하였다.이때 마르다의 나이는 26세, 죠오보다 몇 달 빠른 연상이었다.

죠오지와 마르다는 매력적인 상대들이었다. 미망인이다고는 하지만 26세의 아름답고 발랄한 젊은 여인에겐 꿈도 꿀 수 없는 부(富)가 따랐기에 도리어 매력으로 작용하였으며 건장한 외모에 군사지도자로 명성을 얻고 있던 죠오지는 당시 세상을 떠난 이복 형으로부터 마운트 버논(Mount Vernon)에 있는 재산을 상속 받아 경제적으로도 꿀리지 않는 당당한 신랑감이었다. 이러한 매력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두 사람은 쉽게 결혼에 이른듯 하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탄탄했던것 같다.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으나 마르다의 두 자녀 Patsy와 Jakey를 정성껏 양육하였다. 그러나 딸 아이는 10대에, 그리고 유일하게 생존하여 군에서 와싱톤을 보좌하던 아들은 전염병에 걸려 20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농장을 관리하면서 결혼생활을 즐기던 마르다는 미국의 독립을 추구하는 혁명의 시작과 함께 와싱톤이 독림전쟁에 사령관으로 징발되자 혼자서 농장들을 관리하여야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장에서 1년 내내 지내야 하는 남편을 위해서 전쟁중인 8년 동안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1년의 반 이상을 남편의 캠프를 찾아 같이 지냈다. 물론 아내로서의 임무가 첫째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존재는 군장교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와싱톤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마르다는 한사코 반대하였으며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와싱톤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그녀는 미국의 첫번째 퍼스트 레이디로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발견하고 잘 감당하려고 노력하였다. 고향을 떠나 임시 수도였던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수많은 행사들을 주관하였으며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그의 임무로 매주 금요일엔 공식 티 파티, 목요일엔 공식 디너 파티 등을 열어 분위기를 잡는데 내조하였다. 그녀는 그러한 것들이 “공허한 의식”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순수한 사교모임이 금지되어 있는 조직사회에서 인화와 국익에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에서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1789년 뉴욕에서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죄수같은 기분이 들어. 이곳의 생활은 아주 지루할뿐 아니라 내가 넘어가면 안되는 어떤 금이 그어져 있어”라고 퍼스트 레이지의 생활을 불평하면서 버지니아 농장에서의 자유로운 생활과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친지들을 그리워 하였다.

두 차례 임기를 마치고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 3선을 거부하고 은퇴한 와싱톤 부부는 버논 힐에 있는 농장으로 돌아와 농장을 경영하며 말년을 보냈다.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던 마르다는 와싱톤이 세상을 떠나자 더욱 악화되더니 그가 떠난지 2년 반만인 1802년에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해는 죠오지 와싱톤의 유해가 있는 Mount Vernon에 가족들과 함께 안장되었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명칭은 그의 생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생시에 그녀는 ‘레이디 와싱톤’ 또는 “우리 대통령의 영부인(our Lady Presidentess)”으로 불렸다. 그녀는 “우리가 행복하냐, 불행하냐의 많은 부분이 우리들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들의 기분에 달렸다”면서 맡은 책임을 성심껏 수행하는 본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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