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로 배우는 미국   ▒  

2017/1/8(일)
도마스 제퍼슨(1743-1826)-제3대 대통령, 영토확장론자 도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제3대 대통령, 영토확장론자- 사우스 다코다주의 블랙힐에는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평판이 좋고  

<늘푸른나무/인물로 배우는 미국/2016년 11월>

도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제3대 대통령, 영토확장론자-

사우스 다코다주의 블랙힐에는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평판이 좋고 공로가 많다고 평가되는 4명의 대통령 얼굴들을 조각한 대형 조각상이 있어서 관광시즌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들을 참배하기위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먼 길을 달려 온다.

거기에는 초대 대통령 죠오지 와싱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노예제도를 폐지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그리고 26대 대통령 데오도어 루즈벨트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제퍼슨 대통령은 건국선조들의 일원으로 제1대 와싱톤 대통령 밑에서는 초대 국무장관으로 일했으며 제2대 대통령 아담스 밑에서는 제2대 부통령(1797-1801)으로 봉직했고 제3대에는 대통령(1801-1809)으로 봉사하였다.

영국이민자의 자녀로 1743년 버지나아에서 출생한 제퍼슨은 윌리암 매리대학을 졸업하고 한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자유를 찾으려는 노예들을 변호하기도 하였다. 독립전쟁기간에는25세의 젊은 나이에 버지니아주의 대표로 대륙회의에서 활약하면서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가 하면 전시 버지니아의 지사로(1779-1781) 활동하는 등 그 어느 누구보다도 건국초기의 미국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

그는 또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지능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문필가로서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것을 위시해서 수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도 프랑스 외교관의 요청을 받고 쓴 가 유명하다.

그러나 미국을 위한 제퍼슨의 공헌은 영토확장론자로서 그가 이룬 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수많은 노예들을 부리며 농장을 경영하던 농장주의 아들로 자란 제퍼슨은 역시 농장을 상속받아 경영하면서 넓은 농장의 가치를 일찍 깨달았던듯 나라를 경영하면서도 영토확장에 관한 꿈을 계속하면서 결국 건국 초기에 지금의 광활한 북미대륙을 미국의 영토로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원주민 인디언들에 대한 적절한 대우와 존경심을 강조하면서도 그들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이주시켜야 한다고 확신하고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제퍼슨은 미시시피 동쪽을 미국의 영토로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미국영토 확장계획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남부 걸프연안 뉴 올린스 지역에 미시시피강과 연결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시작된 프랑스 정부와의 협상은 영국과의 전쟁비용을 확보하려는 나폴레옹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뉴올린스에서 럭키산맥까지 이르는 80만 스퀘어 마일의 광활한 영토를 1천 5백만 달러에 프랑스로부터 매입함으로 북미대륙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북남으로 관통하는 광대한 지역을 미국의 영토로 확보하였다.

루이지아나 매입(Louisiana Purchase)이라고 불리는 나폴레옹과의 거래는 미국으로서는 그 넓은 땅을 싸움 한 번 없이 거저 먹는 협상이었으며 프랑스로서는 스페인으로부터 그저 얻다시피한 명목상의 영토를 돈을 받고 미국에 넘긴다는 점에서 양쪽으로는 다 수지맞는 윈 윈 거래였다.

루이지아나 매입은 미국으로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원주민들을 제쳐놓고 명목상의 주인인 프랑스와 정식으로 매매계약을 통해 합법적으로 주인이 되었다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화근이 될 수 있는 카나다와 미국의 뒷뜰에 자리한 프랑스를 몰아내고 화근을 없애버린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합법적인 소유자가 되면서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서부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용이해졌다. 대서양 동부연안 13개주가 합쳐서 조그맣게 시작된 미 합중국(그때는 그만하면 넉넉했지만)이 이렇다할 전쟁도 거치지 않고 태평양까지 진출(이제는 포화된 동부에서는 서부에로의 지출이 당면과제가 되었다)하여 전 북미대륙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루이지아나(당시의 루이지아나는 지금의 루이지아나 주가 아니라 걸프해안의 뉴올린스에서 북쪽의 카나다 국경과 서쪽의 럭키산맥에 이르기까지의 광활한 지여을 말한다)를 매입한 제퍼슨 대통령은 군출신 루이스와 클락을 책임자로 하는 루이지아나 탐험단을 조직, 새로이 매입한 지역의 관측과 탐사업무를 맡겨 새로운 영토에 대한 첫 탐험을 시작하였다.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2년여 동안 탐험을 한 이들 일행은 수로와 자연생태와 원주민 부락들을 탐사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결국 태평양과 연결되는 수로를 발견하는데는 실패하였다.

제퍼슨은 정치가나 사상가로서만이 아니라 다방면의 재능을 보여 주었다. 은퇴후 그는 교육가로서 버지니아 대학교와 윌리암 앤드 매리 칼레지에서 봉사하면서 직접 학교건물을 설계, 건축하였을뿐 아니라 그의 고전적인 건축물들은 당대의 가장 훌륭한 건축물로 높이 평가 받고 있으며 30여년에 걸쳐 직접 설계, 시공한 그의 농장에 지는 저택은 지금도 고전적인 문화유산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정치가로서의 제퍼슨은 인권을 강조하고 자유와 관용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지만 그의 농장에서는 수 백명의 노예들이 일하고 있었다하여 그의 2중성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당시의 상항을 감안하면 불가피하였다는 옹호론자들도 있다. 후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는 1782년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흑인 하녀와 생활하면서 적어도 한 명의 자녀를 낳아 기른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그것은 유전자 검사가 발견된 훨씬 후대의 일이며 정식 결혼생활이었는지 아니면 동거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연방제를 반대하고 공화제를 주장하는 건국선조들이 세운 미 합중국이 1867년 알라스카까지도 제정 러시아제국으로부터 매입하여 카나다를 제외한 북미대륙 전체를 장악하고 건국 100여년 만에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한데는 제퍼슨과 같은 영토확장론자들의 꿈이 있어 가능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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